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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27] 소로(Thoreau) 탄생 200주년

바람아님 2017. 7. 12. 09:20
조선일보 2017.07.11. 03: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내일(12일)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탄생한 지 200년 되는 날이다. 평생 자기도취에 빠져 비현실적인 금욕주의나 설파한 오만한 학자라는 비판도 있지만, 200년이 흐른 오늘에도 그의 가르침은 구구절절이 유효하다. 그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1837년 미국은 독립한 지 70년밖에 되지 않은 신흥 국가로서 때마침 대공황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다.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지 역시 70년 남짓 된 지금 이 땅의 젊음이 맞닥뜨린 시련과 묘하게 겹쳐진다. 소로는 1845년 7월 4일 월든 숲으로 들어가 고독한 자립을 실험한다. 그것은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삶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2년2개월 하고도 이틀에 걸친 야생의 삶에서 소로가 깨달은 교훈은 '삶에서 필요를 줄이면 그만큼 자유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미국에 살던 시절 틈만 나면 월든 호수를 찾았던 나는 알게 모르게 그의 철학을 체득한 것 같다. 생태학을 이론뿐 아니라 삶 속에 녹여내는 길을 찾았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산다. 아내가 강권해 사주기 전에는 스스로 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아무리 멋진 전자 기기가 새로 출시돼도 그걸 사기 위해 줄을 서본 적은 더더욱 없다. 미국 유학 초창기에 잠시 BMW 2002를 흠모했던 이래 여느 사내들처럼 차에 대한 로망도 일절 없다. 일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자본주의의 고질인 과소비를 덜어내고 단순한 삶을 살면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고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의 책 '월든'에는 절제된 삶을 실천하며 관찰한 자연의 섭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로는 생태학을 실천에 옮긴 귀한 학자다. 나는 국립생태원장 시절 그곳에 '제인 구달의 길'과 '다윈―그랜트의 길'에 이어 세 번째 생태학자의 길로 '소로의 길'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올해가 그의 탄생 200주년이라 바로 내일 명명식을 가질 수 있었더라면 홍보 효과도 상당했을 텐데 국립생태원 내부 사정으로 무산돼 무척 아쉽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