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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26] 반달가슴곰의 여로

바람아님 2017. 7. 5. 10:28
조선일보 2017.07.04. 03:1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15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경북 김천 수도산에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15㎞ 떨어진 경남 함양까지 이동한 게 고작이었는데 이번에는 직선거리로만 무려 80㎞를 이동한 셈이다. 게다가 지리산과 수도산 사이에는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대전통영고속도로가 가로막고 있는데 어떻게 이동했는지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2002년 환경부가 지리산 반달가슴곰 개체군 복원 계획을 발표했을 때 나는 동물생태학자로서 반대 의견을 냈다. 종 복원을 목적으로 야생 방사를 할 때 보전생물학에서는 최소생존개체군(MVP) 조성을 권유한다. 개체군생존가능성분석(PVA)에 따르면 육상 척추동물의 경우 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500~1000마리는 확보해야 한다. 이에 비하면 100년 존속을 위해 반달가슴곰 50마리를 확보하겠다던 환경부의 목표는 그야말로 '최소' 규모였다. 지리산 생태계가 과연 이 최소 개체군이나마 수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2007년 11월1일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나무 위에 올라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곰은 이날 지리산 동부 지역 능선에서 방사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하지만 나 같은 딸깍발이 학자들은 부지하세월 분석만 거듭할 뿐 저지르지 못한다. 환경부는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2004년부터 모두 38마리를 방사했고 그중 15마리가 죽었으나 새끼들이 제법 많이 태어나 현재 46마리가 지리산에 살고 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개체가 자리를 잡았다. 자연은 늘 스스로 길을 찾는다. 이제 이 개체군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관한 체계적인 생태 분석이 필요하다. 이번에 발견된 곰은 태어난 지 2년 5개월쯤 된 '청소년' 수컷이다. 젊은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살던 지역을 떠나 이동하며 짝짓기할 암컷을 찾는다. 15년 전에는 못 했더라도 이제는 번식과 관련된 행동 생태도 고려해야 한다. 언젠가는 곰들에게 지리산국립공원과 더불어 덕유산국립공원도 내줬으면 한다. 방사된 동물과 인간의 접촉도 줄이고 지나친 관리도 피하려면 무엇보다 서식지 면적을 늘려야 한다. 형식적으로 얄궂은 생태 통로 몇 개 설치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격적인 국립공원 간 생태 축 연결을 보고 싶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