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22 김윤덕 기자)
스마트폰에 담은 140여개 풍경 '네모 그림자'展 연 강운구 작가
"나이를 먹었다는 거지.
전에는 한번 '순찰'(촬영여행) 가면 가방에 한가득 현상할 필름을 담아 왔는데 점점 줄어들어요.
보이는 게 없는 거야. 심장에 막강한 면역체계가 생겼다고 할까.
웬만한 건 눈에 안 들어오고, 주워올 것도 없고.
그러다 스마트폰을 만난 거예요."
‘폰카’덕에 사진이 다시 재미있어졌다는 강운구 작가. 그 옆에 대구 달성에서 찍은 사진이 보인다. /이태경 기자
'네모 그림자'전(展)이 열리고 있는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강운구(76)는 들뜬 청년처럼 보였다.
9년 전 '저녁에' 전시 이후 "찍을 게 없어 슬럼프를 겪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노장(老匠)의 눈빛은 '신세계'를 목격한
탐험가처럼 반짝였다. 벽면에 걸린 140여 점 사진들은 '강운구답지' 않게 부드럽고 세련되고 경쾌했다.
지난 40년간 그는 경주 남산, 내설악 너와집 같은 우리 산하와 민초들 풍경을 담아왔다.
반드시 수동 카메라로 찍었고, 흑백으로만 인화하는 고집을 부렸다.
이번 전시에선 그 원칙을 모두 깼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 일명 '폰카'로 찍었고, 컬러로도 인화했으며, 국외 풍경도 자유로이 담았다.
"이 땅의 사진가로서 나의 의무 복무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자유롭게 찍어야지 맘먹었는데 폰카가 보인 거지요.
근데 이게 장난이 아니야. 조리개나 셔터를 조절할 필요도 없이 손가락만 까딱 누르면 되니 공짜나 다름없는데
화질이나 섬세함까지 아날로그 못지않은 거죠.
이 별난 물건에 맞는 콘셉트를 찾다가 네모 그림자들을 찍게 된 겁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폰카가 낚아챌 수 있는 심플한 네모 풍경들을 찍었다.
네모만 찍으면 심심하니 자신의 그림자 혹은 두 발을 넣어 '흔적'을 남겼다.
오래된 가게의 창문, 시골집 빛바랜 황토벽, 미술관에 걸린 액자, 아스팔트에 찍힌 얼룩, 무슬림 사원의 작은 거울….
한국을 벗어나 스페인, 벨기에, 이란, 터키, 에티오피아 등 여행하며 만난 크고 작은 '네모 그림자'들도 앵글에 담았다.
벨기에‘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에서 찍은 2017년 작품.
미술관 창문으로 보이는 마그리트의 유명한 중절모 신사 모형의 거울과 거기 비친 작가의 그림자가 중첩돼 묘한 풍경이 됐다.
/한미사진미술관
피레네산맥 국경에서 찍은 '파사주'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다.
유대계 독일 평론가 발터 벤야민이 나치에 쫓겨 국경을 넘다 자살한 스페인 포르브 마을.
파사주는 이스라엘 건축가가 벤야민을 추모해 지은 건축물로,
강운구는 폰카의 사각 틀에 바다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계단과 이를 촬영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동시에 담았다.
돌산을 파서 지은 에티오피아 암굴 교회의 네모 그림자도 이채롭다.
"실제 보면 무시무시해요. 저런 암굴 교회가 열 몇 개나 더 있다고 해서 놀랐지요.
성배가 그곳에 감춰져 있다는 속설도 있고요."
폰카로 찍었다고 해서 감동의 깊이가 얕아진 건 아니다.
김천 어느 시골집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젖은 아스팔트에 널린 낙엽, 저물녘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 자신의 그림을
길게 담아 찍은 사진들은 강운구 특유의 연민과 서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내가 아날로그의 순교자가 되기를 바라는 후배들이 여전히 있지만 이제 내게 필카(필름카메라)와 디카, 폰카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것들로 한 '무엇'이 중요할 뿐이죠.
히말라야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고 다들 '라이카로 찍은 거죠?'라고 묻던데 아이폰으로 찍은 거였어요.
뭣보다 막장(암실)에서 약품 냄새 맡아가며 인화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주 맘에 들어요."
산문집도 예닐곱 권 낼 만큼 문재(文才)도 갖춘 강운구는 전시 도록에 이렇게 썼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마침내 나는 나를 믿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금은 나에게 너그러워졌다.'
그는 "노년의 과오가 될지라도 이 실험을 계속해보고 싶다"며 빙그레 웃었다.
11월 25일까지. (02)418-1315
강운구 《네모 그림자》展 기간 : 2017/09/16 - 2017/11/25 장소/기획: 한미사진미술관/ (02)418-1315 홈페이지 : http://www.photomuseum.or.kr/ 참여작가: 강운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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