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출처-조선일보 2010.09.24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의 작전을 흔히 전격전(Blitzkrieg)이라고 한다. 이는 탱크와 장갑차량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기습 진공하는 전쟁 방식을 가리킨다. 나치는 오래전부터 이런 전략을 준비해 왔던 것일까? 역사가들은 나치군의 전술전략 문서에서 전격전과 관련된 내용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독일군 참모부는 그와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었다. 사실 '전격전'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없었다가, 폴란드 침공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시사주간지 '타임'(1939년 9월 25일 자)에 처음 등장했는데, 나치의 선전 담당자들이 이 단어의 효용성을 파악하고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격전이라는 말이 군사 전문용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전후에 영국의 군사 전문가인 하트(Basil Hart)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을 쓰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특히 나치의 장군이었던 구데리안(Heinz Guderian)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구데리안은 마치 그가 전격전 개념을 일찍부터 창안했고 이 때문에 독일군이 승리했던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전쟁 초기에 독일군이 승승장구했던 것은 프랑스군의 잘못된 대응에다가 우연적인 요소들이 겹쳤기 때문이며, 독일군도 프랑스를 쉽게 이긴 것을 '기적'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독일군의 기계화 비율은 10%에 불과해서, 대포는 여전히 말을 이용해 옮겼고 대부분의 군인들은 도보로 이동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데리안과 롬멜 장군은 원래의 작전계획에 따라 전진을 멈추라는 독일군 지도부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돌진해 갔다. 결국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사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태도였다.
실제 전격전과 가장 비슷하게 사전 준비된 소련 침공은 오히려 실패로 끝났다. 전격전은 이론적인 바탕이 없고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델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전격전 개념이 사후적으로 합리화된 것은 냉전이 극성이었던 1950년대 초에 서독 군대를 재창건하기 위해 전직 나치 장군들의 협력이 필요했던 시대 상황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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