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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4] 장어

바람아님 2013. 10. 6. 19:43

(출처-조선일보 2010.04.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여러 해 전 일본 이누야마에 있는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그 지방의 명물이라는 '히쓰마부시' 장어덮밥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절반 이상을 먹으니 덮밥에 육수를 부어 먹겠느냐 묻는다. 장어란 워낙 기름기가 많은 생선인데 국물을 부어 먹는다는 게 왠지 꺼림칙했지만 일본 학자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보았다. 뜻밖에도 느끼하기는커녕 담백하기가 일품이었다.

장어는 연어와 반대로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나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물고기이다. 민물과 짠물 양쪽에서 사는 까다로운 생리적 요구 때문인지 장어는 그동안 알을 부화시켜 성어를 길러내는 이른바 '완전 양식'이 불가능했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치어를 강 어귀에서 잡은 다음에야 양식이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장어 치어의 값은 그야말로 금값이다. 저울에 마주 달면 그 가격이 얼추 맞먹는단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일본 국내의 공급이 당최 수요를 따르지 못해 70%가량을 중국 등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러던 일본이 최근 호르몬 기법 등을 이용한 인공수정과 부화에 성공하여 70cm에 달하는 어른 장어를 길러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 장어의 인공양식에 도전한 지 무려 반세기 만에 이룬 개가이다. 한때 미국 대륙과 유럽의 강에 서식하는 모든 장어들이 대서양 버뮤다 군도 근방에 모여 암컷들은 알을 낳고 수컷들은 그 위에 정액을 흩뿌리는 거대한 '성의 향연(sexual orgy)'을 펼친다는 가설이 제기된 바 있다. 이 같은 프로이트식 기대와는 달리 2001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의 유전학적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유럽의 장어들은 그런 대규모 임의교배를 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일본의 해양생물학자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장어들의 난교 현장을 급습하는 꿈에 젖어 수십 년째 남태평양을 이 잡듯 뒤지고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생물의 진화가 그 종이 분포하는 전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한 종에 속하는 모든 개체가 한곳에 모여 완벽한 의미의 임의교배를 하는 생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비록 완전 양식에 성공했더라도 일본 학자들이 만일 장어의 임의교배를 입증한다면 학문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또 하나의 개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