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4.0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어쩌다 우리 사회에 '집단지성'이라는 사뭇 과망한 번역으로 소개된 집단지능은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약간은 경쟁적으로 협력하며 아이디어를 내다보면 훨씬 더 훌륭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집단지능 연구는 1911년 하버드대학의 곤충학자 윌러(William Wheeler)가 개미 군락의 일개미들은 분명히 독립된 개체들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즉 초유기체(superorganism)처럼 행동한다는 혜안을 내놓으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최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태를 지켜보며 여럿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집단지능은 이른바 병렬 수행(parallel processing) 방식을 채택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 아무리 여럿이 함께 일한다고 해도 모두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직렬 또는 순차 수행(serial processing) 방식으로 일한다면 혼자서 하는 것에 비해 그저 양적인 이득만 얻을 뿐이다.
개미나 꿀벌의 집단행동을 흔히 무리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객쩍게 무리로 몰려다니며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자가조직의 원리에 따라 철저하게 병렬 수행의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개미학자 고든(Deborah Gordon)은 개미굴 앞에 이쑤시개를 잔뜩 뿌려놓고 그들이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는가 관찰했다. 일개미들은 제가끔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면서도 자기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동료를 발견하면 기꺼이 그의 작업에 합류한다. 다분히 획일적으로 보이는 개미의 행동은 사실 많은 일개미들의 자율적인 개별 행동들이 수렴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내가 만일 이번 구조 현장에 투입된 일개미라면 우선 배 바닥 쪽 뻘에 거대한 물대포를 쏘아 선체를 곧추세우는 황당한 짓을 했을 것이다. 일단 배를 바로 세우면 진입이 훨씬 쉬울 게 아닌가. 군의 조직상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허용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집단지능 연구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곳이 미국 국방부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 침몰한 선체를 발견한 사람이 직렬 명령 체계 밖에 있었던 민간인 어부였다는 사실은 묵직한 여파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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