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9.1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9세기 후반은 기상 악화로 인해 세계 각지에 극심한 재앙들이 들이닥쳤던 시기다. 1876년부터 1879년까지 무려 4년 동안 계절풍이 불지 않아서 아시아 여러 지역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가뭄이 들었다. 거의 10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지만 자바, 필리핀, 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마그레브에서도 가뭄과 기근이 보고되었다. 1889년부터 1891년 사이에 다시 인도, 한국, 브라질, 러시아, 아프리카에 기근이 닥쳤다. 이때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다시 1896년부터 1902년에 열대 지방 전역과 중국 북부에 계절풍이 불지 않아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발생했다. 세 번에 걸친 이 재앙으로 전 지구적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적게는 3000만명, 많게는 5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인류 역사상 매우 큰 재앙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이런 현상이 지역 단위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엘니뇨라 불리는 기상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확인되었다.
기근의 현장은 한편의 지옥도를 연출했다. 1877년 인도의 마이소르에서는 굶주린 여성들과 아이들이 들판에서 이삭을 주워 모으려다가 낙인이 찍히고 고문당했으며 코가 잘리거나 심지어 살해당했다. 폭도들은 지주들과 촌장들을 공격했고 곡물 창고를 약탈했으며, 심지어 가족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기까지 했다. 굶다 못해 정신이 이상해지면 식인(食人) 행태가 벌어진다. 당대 기록에 의하면 "미친 사람 하나가 무덤을 파헤쳐 콜레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먹었고 또 다른 사람은 아들을 죽여 그 시체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엄청난 재앙의 원인을 전적으로 자연재해에만 돌릴 수는 없다. 극히 일부 지역만 제외하면 잉여 곡물이 정말로 한 톨도 없는 곳은 없다. 제국주의의 잔혹한 침탈에다가 최소한의 구호 역할을 하던 전통 마을 체제의 붕괴가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이다. 대흉년의 해인 1877~1878년에 인도에서 유럽으로 선적한 밀은 32만t이라는 기록적인 양이었다. 이런 가혹한 기아수출 현상에서 보듯 천재(天災)는 대개 인재(人災)와 함께 닥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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