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한국어 외면하는 한국인

바람아님 2017. 11. 13. 09:51

[중앙선데이] 입력 2017.11.12 01:00 | 557호 31면 

   

외국인의 눈
8년 전 이맘때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 합격 통지문을 받고 대전에서 공부하다가 서울로 이사를 했다. 첫 강의 시간에 다들 자기소개를 했다. 터키 출신인 필자는 토종 한국인 흉내를 내서 거의 한국어만 썼다. 그런데 어떤 한국 학생이 언어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정도로 신기한 언어로 소개했다. “A 스테이트 유니버시티를 졸업하고, 아메리칸 포린 폴리시를 콘센트레이션했고 두 달 전에 컴백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한국어가 안타깝게도 ‘졸업’과 ‘달’밖에는 없었다. 왠지 ‘두 달’ 할 때 그 ‘두’는 한국의 하나둘 할 때 ‘두’가 아니고, 영어의 ‘투(two)’같이 들렸다.
 
내 생각엔 요즘 한국인의 고유 언어인 한국어가 큰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공격을 받고 있다. 한국어 단어들이 매일 매일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외국어에 밀려나고 있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귀찮아서 그런지, 아니면 멋있게 보이려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일부 한국인은 한국어보다 외국어 표현을 더 선호한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사회지도자급 인사들도 순 한국어 단어들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외국인인 내가 더 걱정할 정도다.
 
다시 그 학생의 자기소개를 예로 들어 보자. ‘돌아왔다’는 말이 있는데 왜 굳이 컴백했다고 말해야 했을까. 그렇게 한국어가 무시당한 이유를 알고 싶다. 언어의 수호자인 문학인과 언론인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뉴스 방송 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외국어를 많이 쓰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다.
 
조상들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모국어는 우리의 명예다.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유학파들로부터 반박을 받기 십상이다. 필자도 터키의 유학파 출신이라서 가끔 터키말로 이야기하다가 한국어나 영어 단어가 모르는 사이에 나오기도 한다. 한국의 유학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길지 않은 유학 생활로 어떻게 한국어 실력이 오래 해외에서 산 동포 수준으로 쉽게 떨어지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이처럼 모국어에 얼굴을 돌린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연애편지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손자나 손녀가 나올 수도 있다. 적어도 외국인인 필자가 한국어의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해져선 안 될 것이다.
 
 
알파고 시나씨
하베르 코레 편집장, 전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