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1.26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그리스 세계의 정복을 꿈꾸며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들어왔다. 테살리아와 마케도니아처럼 지레 겁을 먹은 일부 도시국가들은 항복한다는 의미로 물과 흙을 선물로 제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일치단결하여 저항하기로 결정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곳은 스파르타였다. 상무정신(尙武精神)으로 유명한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대군의 위협에 전혀 굴복하지 않았다. 페르시아의 사자 두 명이 찾아와 건방지게 '물과 흙'을 요구하자 그들을 우물 안에 집어던지며 "그 안에 물과 흙이 가득하니 마음껏 가지라"고 응대한 것은 잘 알려진 고사이다.
원래 스파르타군은 전쟁에서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아들이 전쟁터로 나갈 때 스파르타의 어머니는 "방패를 들고 오든지 그 위에 누워 오라"고 말했다. 이는 싸워 이겨서 돌아오든지 아니면 명예롭게 전사해서 동료들이 들어주는 방패 위에 누워 오라는 이야기이다. 또 그들은 차라리 헬멧은 놓고 와도 되지만 방패를 놓고 오는 것은 불명예로 쳤다. 헬멧은 고작 자기 머리를 보호하는 데 쓰이지만 방패는 자신과 동료의 몸을 함께 지키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전쟁 직전 페르시아는 다시 사자를 보내 항복을 권했다. 사자가 "페르시아인들의 친구가 되라"며 자신의 무기를 땅에 내려놓자 스파르타의 국왕 레오니다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돌아와서 무기를 도로 집으시오." 스파르타는 용맹한 전사 300명을 차출하여 레오니다스 왕의 지휘하에 테르모필레 협로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소수만 참전한 것은 축제 중에 군대를 일으키지 못하는 관례 때문이라고 한다. 페르시아군의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그들이 쏘는 화살이 햇빛을 가릴 정도라는 보고를 받은 레오니다스 국왕은 침착하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늘에서 싸울 수 있으니 잘 됐군." 이들은 결국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사흘 동안 막는 사명을 마친 다음 전원 전사했다.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하여 민간인까지 살해한 북한 정권에게는 체벌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 스파르타 같은 강한 상무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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