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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4] 전쟁

바람아님 2013. 10. 17. 20:03

(출처-조선일보 2010.06.2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6·25전쟁이 일어난 지 어언 60년이 흘렀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은 "전쟁이 매우 참혹한 것은 좋은 일이다. 참혹하지 않으면 우리가 전쟁을 너무 좋아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지만, 인류 역사상 6·25전쟁만큼 참혹했던 전쟁도 그리 많지 않다. 불과 3년 남짓에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무려 300만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된 처참한 전쟁이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을 일으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과 개미뿐이다. 다른 동물들도 서로 물고 뜯으며 때론 상대를 죽이기도 하지만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대규모 살생을 감행하는 동물은 이 둘뿐이다. 인간 사회의 전쟁도 결국 따지고 보면 돈 때문에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개미들의 전쟁도 기본적으로 경제 전쟁이다. 하지만 개미들은 결코 우리처럼 종교나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개미와 인간은 군대의 구성에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노인들이지만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라 했던 제31대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말마따나 우리는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지만, 개미 사회에서는 가장 늙은 할머니들이 우선적으로 전장에 투입된다. 개미제국의 일개미들은 모두 암컷으로 태어나며 처음에는 여왕개미의 시중을 드는 일부터 시작하여 차츰 온갖 집안일들을 거들다가 나이가 많이 들어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드디어 전쟁에 나간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맞아 죽을 말이겠지만, 철저하게 효율만 따진다면 개미가 우리보다 훨씬 현명한 셈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보다 살 만큼 산 할머니를 희생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훨씬 효율적이다. 외골격을 가지고 있는 개미는 내골격을 지닌 인간과 달리 나이가 들어도 근력이 별로 줄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를 파병해도 전력에 차질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만일 할머니들만 전장에 내보낸다면 백전백패할 게 뻔하다. 이건 효율의 문제이지 효(孝)의 문제가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한반도에 때아닌 전운이 감돈다. 평화를 유지하는 비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희생과 견줄 수는 없다. 아들이 아버지를 묻는 것도 서러운데 더 이상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묻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