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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3] 거짓말

바람아님 2013. 10. 16. 18:56

(출처-조선일보 2010.06.1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나라가 온통 거짓말 범벅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최근 감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고 과정의 거의 모든 길목마다 축소·은폐·왜곡·조작 등 온갖 형태의 거짓말이 총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이은 나로호 발사 실패 과정에서도 러시아와 맺은 계약서만 들여다보면 그대로 드러날 내용이 종종 왜곡되고 과장되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온통 새빨간 거짓말보다 진실이 일부 포함된 거짓말이 훨씬 나쁜 거짓말이다. 아무리 구체적인 반박자료를 들이대도 전체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거짓말들은 대체로 이런 거짓말들이다.

동물들도 과연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을 하려면 상당한 지능이 필요하다. 우선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왜곡 또는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북미의 반딧불이 중에는 다른 종의 암컷 신호를 흉내 내어 짝짓기를 하러 찾아온 그 종의 수컷을 잡아먹는 '팜므 파탈' 반딧불이가 있다. 나방의 성페로몬(sex pheromone)과 흡사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암컷이 있는 줄 알고 몰려든 수컷 나방들을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뭉쳐 만든 '끈적이공'을 휘둘러 잡아먹는 기발한 거미도 있다. 그러나 언뜻 지능적으로 보이는 이런 반딧불이와 거미의 행동은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제작해내고 구성원 모두가 입을 맞추며 실행에 옮기는 인간 행동의 현란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모름지기 인간으로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자식의 종아리를 치는 어머니도 아마 선의의 거짓말은 하며 살 것이다. 해로운 진실보다 이로운 거짓이 때론 더 나을 수도 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희망적인 거짓말은 엄청난 치료 효과를 지니므로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의사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화가와 시인은 거짓말을 허락받았다"는 스코틀랜드 속담도 있다. 어쩌면 거짓말은 비상한 두뇌와 고도로 발달한 언어를 가진 인간의 전유물이자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해도 되는 거짓말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이 있는 법이다. 그걸 분간할 줄 아는 사회가 선진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