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6.0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1990년대 중반 오랜 미국 생활을 접고 서울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자 여기저기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동물행동학이라는 남다른 분야를 공부했으니 어디 한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물들의 성생활, 의사소통, 인지능력 등에 대해 멋진 사진 자료들을 동원하여 열심히 강의를 준비했다. 그런데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그런대로 재미는 있어 하는 것 같은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로지 개미에 대해서만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참으로 뜻밖에도 강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에서 마구 손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개미와 인간이 서로 얘기할 수 있나요?" "개미도 지능을 갖고 있나요?" "개미 사회에도 반체제 개미들이 있나요?" 다른 강의에서는 질문을 구걸하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개미에 대해서는 이처럼 상상력 풍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리 머지않아 나는 이 모든 질문들이 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서로 다양한 의사를 주고받는다. 개미학자들은 이제 개미의 페로몬과 유사한 화학물질을 합성하여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개미들이 우리에게 대꾸만 하면 드디어 쌍방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단계까지 온 것이다. 개미 사회가 여왕개미의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통치되는 줄 알겠지만 실제로는 그 사회에도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반체제 세력들이 있다. 개미는 또한 우리 인간처럼 분업도 하고, 농사도 짓고,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상대 종족을 말살하기도 하며, 정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 심지어는 전혀 다른 종의 여왕들과 합종연횡(合從連衡)을 꾀하기도 한다. 자연계에서 우리 인간 사회와 가장 흡사한 사회는 단연 개미들의 사회이다.
2010년 '생물다양성의 해'를 맞아 임진각 평화누리의 경기평화센터에서 이달 11일부터 '개미제국탐험전'이 열린다. 우리나라에는 면적에 비해 퍽 다양한 개미들이 산다. 줄잡아 120종이 분포한다. 기껏해야 40여 종이 서식하는 영국이나 핀란드에 비하면 상당한 생물다양성이다. 이번 여름 아이들과 함께 신기한 개미 세계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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