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1.0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9세에 아버지가 군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그는 과학만이 아니라 어학과 문학에도 소질이 있어서 곧 5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영어로 시를 썼다. 17세에 뉴욕에 가서 4년 동안 저명한 스웨덴계 엔지니어인 에릭손에게서 일을 배운 후 러시아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지만, 곧 그의 형들은 바쿠의 유전 개발에 성공하여 초대형 정유소를 건설했고, 세계 최초로 유조선과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원유 공급 방식을 사용하여 대부호가 되었다.
노벨 자신은 니트로글리세린의 안전성을 확보한 폭약, 곧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고, 이어서 무연화약도 개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는 수에즈 운하나 알프스 산맥의 고타르 터널 같은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평화적인 용도보다도 전쟁용 화약 수요가 엄청나게 컸다. 그의 말년에는 파산 직전에 있던 스웨덴의 군수회사 보포스(Bofors) 사를 인수하여 세계 최고의 대포 제조회사로 키웠다. 유럽 각지에 공장을 설립하고, 또 전쟁이 일어나면 양편 모두에 군수물자를 팔며 큰돈을 벌었지만, 그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마음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이상주의와 비관적인 시니시즘 사이를 오갔다. "한순간에 양측 군대가 서로를 몰살시키는 게 가능한 날이 오면 문명국들은 공포심을 느끼며 전쟁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가 하면 자기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이 죽으면 시체를 뜨거운 황산에 녹여버리라는 비탄 조의 말을 했다. "1분 만에 시체가 녹을 겁니다. 거기에 석회를 섞으세요. 황산과 석회가 섞이면 버릴 것 하나 없는 훌륭한 비료가 되니까요."
실제 장례식을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의 재산을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맡겨 노벨상을 제정했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는 아인슈타인은 1945년 노벨상 수상식 만찬에서 노벨이 가공할 파괴수단을 만든 데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이 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긴 아인슈타인 자신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만들라는 편지를 쓰지 않았던가.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4] 폼페이우스의 해적 소탕 (0) | 2013.10.14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2] 개미 (0) | 2013.10.14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2] 인구센서스와 인구사 (0) | 2013.10.1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0] 개미제국의 선거 (0) | 2013.10.12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1] 피자 (0) | 2013.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