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5.2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선거일이 불과 일주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자들도 막판 표심을 읽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유권자들의 혼란스러움도 그에 진배없다. 한꺼번에 모두 8명에게 투표를 하라는데 후보자는 많고 정보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얼 근거로 선택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서울시민인 나도 시장 후보들은 어느 정도 알지만 구청장이나 교육감만 해도 그들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옛날 학창시절 시험처럼 모르면 무조건 한 번호로 통일하여 찍을 수도 없고, 정보화시대에 걸맞지 않게 거의 '떨이 선거' 수준이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인간이 고안해낸 이상적인 사회제도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동물은 인간만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대한 복종,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이다"라는 김구 선생님의 정의에 따르면 거의 완벽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개미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해마다 엄청난 숫자의 차세대 여왕개미들이 혼인비행을 마치고 제가끔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첨예한 경쟁을 벌인다. 이웃나라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막강한 일개미 군대를 길러내야 주변의 신흥국가들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왕개미들은 종종 동맹을 맺는다. 여러 마리의 여왕개미가 함께 알을 낳아 기르면 홀로 나라를 세우려는 여왕개미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더 막강한 병력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단 천하를 평정하고 난 다음이다. 성숙한 개미제국은 거의 예외 없이 단 한 마리의 여왕이 다스린다. 따라서 건국의 동고동락을 함께한 여왕들 중 한 마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여왕들이 직접 혈투를 벌여 끝까지 살아남은 한 마리가 권좌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개미들이 합의하여 그들 중 한 마리를 여왕으로 옹립한다. 일개미들은 여왕 후보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누가 과연 가장 훌륭한 지도자의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서로 조율하며 결정하고 그에 승복한다. 일개미들 중 일부는 남의 어머니를 추대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물어 죽이는 패륜까지 저지르며 참으로 냉정하게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우리도 함께 살아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가 누군지는 알아야 뽑든 말든 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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