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0.22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피자를 먹을 때마다 혹시 '피자의 세계사' 같은 연구서는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과연! 파리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인 실비 산체스라는 여류역사가가 바로 그런 책을 출판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이란 요리사가 피자의 원조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이란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런 식의 기원 논란은 너무 모호한 점이 많아서 결론을 내리기 힘든 일이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먹는 유형의 피자가 16세기에 나폴리에서 등장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19세기까지도 피자는 이탈리아의 정식 요리에는 들지 못하고, 구멍가게나 혹은 거리의 좌판에서 많이 팔리는 간편한 간식거리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놀라운 적응력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피자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1889년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와 왕비 마르게리타가 나폴리를 방문해서 피자를 주문한 일이다. 왕비가 나폴리의 서민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하자 에스포지토라는 요리사가 토마토(적색), 바질(녹색), 모차렐라 치즈(백색)를 이용하여 이탈리아 국기를 본뜬 3색 피자를 만들었다. 이 피자는 왕비 이름을 따서 마르게리타 피자라 불리게 되었다.
19세기 말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과 프랑스로 이민을 가면서 피자 역시 국외로 널리 퍼져 갔다. 뉴욕에는 20세기 초에 첫 피자가게가 들어섰다. 그러나 피자가 정말로 널리 보급된 것은 1950년대 이후이다. 135개의 지점을 거느린 '피자헛' 체인을 설립한 프랭크 카니, 피자를 집에 배달해주는 새로운 개념의 피자 가게인 '도미노 피자'를 설립한 톰 모나간 같은 사람들이 피자의 대중화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이후 피자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현재 1년에 세계에서 소비되는 피자는 300억 판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이 매년 5판씩 먹는 셈이다.
피자는 '세계화'가 반드시 '균일화'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둥그런 밀가루 반죽 위에 여러 재료를 얹어 굽는다는 점만 같을 뿐 세계 각지의 피자는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과 사회 관습에 적응하며 진화해 가고 있다. 코셔(유대 음식), 할랄(이슬람 음식), 채식주의, 하와이안, 불고기 피자 같은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2] 인구센서스와 인구사 (0) | 2013.10.12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0] 개미제국의 선거 (0) | 2013.10.1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9]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genome) (0) | 2013.10.11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0] 생일 (0) | 2013.10.10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8] 책임의 소재 (0) | 2013.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