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0.1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일반적인 관행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의 경우,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념일이라는 의미의 'anniversary'라는 단어는 흔히 태어난 날이 아니라 죽은 날을 의미했다. 교회에서도 생일을 축하하는 데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성경에는 생일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겪는 불행의 시작을 한탄하는 데 주로 쓰였다. 욥이나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신이 태어난 날은 원죄를 영구히 존속시키는 날 정도로 생각하여 이런 날을 기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차라리 고인을 위해 미사를 드려야 하는 죽은 날이 더 기억할 가치가 있는 날이었다. 물론 예수의 탄생일(12월 25일), 마리아의 탄생일(8월 8일), 혹은 세례 요한의 탄생일(6월 24일)을 기념하지만, 이는 분명 예외적인 인물들의 경우이다. 사실 하지와 동지는 원래 이교 신앙에서 중요한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날을 기독교의 중요 기념일로 만든 것은 기독교 신자들을 그런 이교의 영향에서 지켜내려고 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생일을 기념하는 관습은 중세 말기에 식자층으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예컨대 14세기에 왕실과 귀족 가문에서 점성술이 유행하였는데, 이때 어떤 사람의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의 성인 숭배를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수호성인보다는 차라리 당사자의 탄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에게 생일을 기념하는 관행은 아주 느리게 자리 잡아 갔다. 괴테(1749년 8월 28일생)가 그런 사례이다. 괴테의 말년에는 그의 생일 축하 행사가 공공 행사가 되었으며, 1819년에는 독일 전체에서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생일 축하 노래(Happy birthday to you)는 1893년에 작곡되었고, 노랫말은 1924년에 가서야 붙여졌다.
나 개인의 삶이 시작된 날을 소중히 여기고 기념하는 관행은 단순한 일 같지만, 크게 보면 근대 개인주의 문화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이며, 생각보다 훨씬 후대에 널리 퍼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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