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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7] 경쟁

바람아님 2013. 10. 9. 18:40

(출처-조선일보  2010.05.0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세계 휴대폰 시장의 경쟁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한동안 탄탄하게 유지되던 노키아-삼성-LG의 3강구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먼저 발 빠르게 장판에 뛰어든 KT를 겨냥하여 SK텔레콤이 이른바 '소녀시대 전략'을 들고 정면대결을 선포했다. 인기 절정의 '소녀시대' 멤버 9명이 각자 따로 고정팬을 끌고 다닌다는 점에 착안하여 무려 10종의 스마트폰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다양한 제품들의 각개격파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경쟁은 생태학의 가장 핵심적인 연구분야이다. 하지만 경쟁에 대해 가장 명확한 그림을 보여준 사람은 뜻밖에도 줄리어스 시저였다. 그는 일찍이 이웃 종족 간의 경쟁은 결국 둘로 나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자원의 선점과 생존에 대한 직접적 간섭이 그것들인데, 이는 곧바로 현대생태학이 분류하는 경쟁의 두 종류이다.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경쟁에는 필요한 자원을 선점하여 상대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이른바 쟁탈경쟁 또는 자원경쟁이 있는가 하면, 보다 직접적인 대면경쟁도 있다.

위협 행동 또는 직접적인 공격으로 나타나는 대면경쟁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경쟁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자원을 두고 벌이는 간접적인 경쟁이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우리 삶에도 다분히 대면경쟁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사회 현상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 활동, 특히 경제 활동은 대체로 자원경쟁이라는 간접적인 형태를 취한다.

경쟁의 속성으로 가장 분명한 것은 경쟁하는 대상들의 자원에 대한 선호도가 비슷하면 할수록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이를 생태학에서는 '경쟁적 배제의 원리(competitive exclusion principle)'로 설명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두 종이 완벽하게 동일한 자원을 놓고 경쟁할 경우 둘 중 하나는 언젠가 반드시 절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자연계에 현존하고 있는 생물들은 모두 제가끔 되도록 남의 발을 밟지 않으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들 간의 경계가 현재진행형의 첨예한 힘겨루기의 현장인지, 아니면 다분히 평화적인 협약의 결과인지를 밝히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자원경쟁의 시장이 홀연 대면경쟁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자못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