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1.1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세계의 대학 입학제도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있다. 이것은 중등교육과정을 잘 수료하여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검정하는 시험으로서,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리세 마지막 학년에 치른다. 이 제도는 나폴레옹 시대인 1808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니, 무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 초기에는 대학입학이 상층계급의 전유물이어서, 1808년 첫해에는 과학 영역 바칼로레아 한 종류만 있었고, 구술시험을 통해 31명의 자격자(bachelier)만 배출했다. 1차대전 전야만 해도 여전히 자격자는 7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소수였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때까지 대학은 대부분 도시 상층민에게만 문호가 개방되어 있었고, 농촌 지역에서는 초등교육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960년대에 이러한 사실상의 구분이 사라져서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바칼로레아를 거쳐 대학에 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1960년에 5만명이었던 자격자는 5년 안에 10만명에 육박했다. 이후 계속 응시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영역도 분화하여 현재는 일반·전문·기술 세 영역의 바칼로레아가 있어서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맞춰 한 가지를 선택하여 응시한다.
영역에 관계없이 모든 응시자들이 치르는 철학시험에서는 광범위한 독서와 독창적 사고를 요하는 논술문제가 출제된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식의 문제들은 응시자만 아니라 전 국민이 한 번쯤 이야기하는 화제가 되곤 한다.
이 제도 역시 여러 문제를 안고 있고 많은 개선 요구에 직면하지만, 장구한 기간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사회의 민주화와 다양화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품위와 권위를 누린다는 것은 정말로 큰 장점이다. 말로는 교육이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제도를 바꾸면서 그때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몇 년 뒤에는 또 어떤 새로운 대입제도가 발명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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