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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9] 長壽

바람아님 2013. 10. 19. 10:04

(출처-조선일보 2010.12.17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녀 시빌레는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무엇이든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시빌레는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는 모래알 수만큼의 수명을 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젊음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만큼 계속 늙어갔다. 늙어갈수록 점점 몸이 졸아든 그녀는 마침내 병 속에 담겨 동굴 천장에 매달린 채 아이들의 조롱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의 에피그라프[題詞]에서 이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나는 쿠마의 무녀가 병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넌 소원이 뭐니?' 하고 소년들이 물었을 때 무녀는 이렇게 답했다. '난 죽고 싶어.'"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는 황금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장수를 누렸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아담의 자손들은 모두 수백 년을 살았고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므두셀라(에녹의 아들이며 노아의 할아버지)는 969세를 살았다고 한다. 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비관적인 성격이 짙어서일까, 신화의 주인공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오래 살지는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생불사를 찾아 헤매던 길가메시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120세의 수명을 누리다가 죽었다. 실제 인간의 수명의 한계는 대체로 120년 정도로 보인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프랑스의 잔 칼망(Jeanne Calment· 1875~1997)으로서 122년 164일을 살았다. 이 할머니는 120세 이상 생존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의학이 발달하고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신생아의 경우)은 남자 77세, 여자 83.8세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되고 오래 사는 사람은 150세까지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에서 만난 한 철학자는 인간은 얼마 동안 사는 것이 좋으냐는 물음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새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