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2.2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은 송년음악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실러가 지은 시 '환희의 송가'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4악장은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리라(Alle Menschen werden Brüder)'는 노래를 통해 베토벤은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베토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곡들은 후대에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무엇보다도 베토벤은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였다. 그는 "베토벤이라는 단 한 명의 독일인이 모든 영국인을 합친 것보다 음악에 더 큰 공헌을 했다"고 단언했다. 9번 교향곡도 히틀러와 나치들이 가장 즐겨 연주했던 곡이었다. 특히 1933년에 나치 당원이 되었던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는 이 곡이 빠지지 않았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1937년과 1942년의 히틀러 생일, 그 외에도 히틀러청년단이나 나치군, 히틀러 친위대를 위한 연주에 '환희의 송가'가 자주 울려퍼졌다.
1934년 11월 실러의 탄생 175주년 기념일에 히틀러는 "20세기의 천재가 18세기의 천재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과장하여 말했다. 나치는 이 곡을 세계 만민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독일 국민을 위한 노래로 만든 것이다. 유명한 공산주의 계열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는 이 점을 비꼬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영토를 지배하려는 곳 주민들, 유대인, 흑인 같은 사람들만 빼고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리라."
다른 사람들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 곡을 이용했다. 독일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지휘자 발터 담로쉬는 '유럽의 전쟁광들을 진정시킨다'는 의미로 1938년에 뉴욕에서 '환희의 송가'를 연주했다. 심지어 1944년 3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사람들이 합창단을 조직하여 체코어로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 이때 이 곡은 나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유사하다. 1972년 이래 유럽연합의 노래로 이 곡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가장 추악한 인종주의 국가였던 로디지아가 이 곡을 국가로 사용하기도 했다. 죽은 변도변(베토벤)씨는 지하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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