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2.3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유토피아는 16세기 영국의 지식인이자 정치가였던 토머스 모어의 공상 소설 제목으로서 '어디에도 없는 곳(u+topia)'이자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eu+topia)'을 뜻한다. 그 이상사회는 고단하고 비참한 현실사회의 거울 이미지이기도 하다.
당시 유럽 사회는 사상 유례없는 격심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은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빈민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농민들이 조상 대대로 경작하고 살던 자기 땅에서 쫓겨나 유랑민으로 전락하게 된 현상이다. 모직물 공업의 발전으로 양모 수요가 늘자 귀족 지주들은 소작인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목양지로 바꾸어 버렸다. 수백 명이 생계를 유지하고 살던 넓은 농지가 이제는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는 곳으로 바뀌었다. 쫓겨난 농민들은 대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했고,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다가 결국 교수대에서 비참한 삶을 마감하곤 했다. 양 때문에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현상에 대해 '유토피아'에서는 "그 온순하던 양들이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을 잡아먹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유토피아는 이런 비참한 현실 문제들이 해결된 사회를 상상해 본 작품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루 6시간씩 일하고, 그렇게 얻은 성과물을 똑같이 나눈다. 사람들은 헛된 욕망을 벗어던지고 오직 고상하고 안정된 취미 생활을 즐긴다. 덕성스러운 어른들이 집안을 잘 다스리고 올바른 정치를 펼친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정말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잘살 수 있을까? 저자 자신도 작품 말미에 과연 이런 사회가 완벽하게 이상적인 곳인지 스스로 의문을 던진다. '유토피아'라는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 사회의 답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과연 이상적인 사회란 어떠해야 하는지 계속 질문을 제기하는 데에 있다.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능력인 것 같다. 그 꿈은 실현 불가능한 황당한 꿈이어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에서 출발한 지성적인 꿈이어야 한다. 물론 거기에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실천 의지가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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