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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6] 국립자연박물관

바람아님 2013. 10. 19. 10:01

(출처-조선일보 2010.07.0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내가 살고 있는 서대문구에는 훌륭한 자연사박물관이 둘이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이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자연사박물관이다.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작년 11월부터 '기후변화특별전'을 열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임진각 평화누리의 경기평화센터에서 절찬리에 '개미제국탐험전'을 시작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얼마 전 '지구의 정복자 딱정벌레'전을 마치고 오는 7월 10일부터는 '상어의 신비'전을 연다.

나는 성인이 되어 산 삶의 거의 전부를 자연사박물관에서 보냈거나 그에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았다. 20대 중반에 도미하여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프로스트곤충학박물관에서 석사학위를 한 다음 하버드대학 비교동물학박물관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미시간대학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에는 아예 그곳 동물학박물관 건물 안에 내 연구실이 있었다. 1994년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서울대학교로 부임하여 잠시 허전했지만, 그 이듬해인 1995년 김영삼 정부가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계획을 공표하는 바람에 지난 15년을 하염없는 기다림의 세월로 보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는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장 일을 맡고 있다.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초창기부터 애써오신 원로 생물학자 이병훈 교수님은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이름 대신 '자연박물관'이라 부르자고 제안하신다. 자연사(自然史)박물관은 이제 더 이상 죽은 생물의 표본이나 전시하는 '자연사(自然死)' 공간이 아니다. 자연박물관은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 BT산업의 기반을 마련할 21세기 최첨단 생명과학 연구의 메카가 될 것이다.

G20 국가 중에서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자연사박물관의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 굴지의 자연사박물관장들은 한결같이 내게 후발주자의 이점을 강조한다. 그들이 비록 우리보다 먼저 뛰기 시작했지만 두터운 전통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힘들어할 때 우리는 생물다양성 연구를 기반으로 한 BT, NT, IT가 어우러진 21세기형 최첨단 국립자연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뛸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