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2.1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북한에서는 혹독한 독재정치가 지속되건만 현재 북한 주민들 중에 그 체제를 전복시키고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정치와 사상 통제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체제가 영구히 지속되고, 사람들은 아무 불평 없이 그저 압제를 참아내기만 할 것인가? 사람들이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정권에 도전하는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토크빌의 견해를 참고할 만하다.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토크빌은 부패한 정부에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개혁을 하려는 때라고 말했다. "혁명은 반드시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압제적인 정부 치하에서도 마치 느끼지도 못하는 듯이 아무런 불평 없이 잘 참아내던 사람들이 그 압력이 완화되는 순간, 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사실 위로부터 계속 압박을 가하면 사람들은 감히 항거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독재정부 스스로 개혁의 필요성을 느껴 압박을 약간 풀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한때는 불가피한 것으로 체념하고 감내하던 폭정도 일단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즉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억압으로 여겨지게 된다. 왜냐하면 일부 폐단이 시정될 경우 아직 시정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폐단은 더욱 참기 힘든 것으로 돋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고통을 덜 받는 만큼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지는 것이다. 봉건제는 절정기에 있을 때 오히려 해체기의 경우보다 프랑스인들에게 증오감을 덜 불러일으켰다. 마찬가지로 루이 16세의 사소한 권력 남용이 루이 14세의 혹독한 전제정치보다 더 참기 힘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역사가 바로 이런 경우로 볼 수 있다. 분명 민주화와 경제성장 면에서 북한보다 훨씬 진전된 남한 사회에서 오히려 불만과 항의가 더 격렬한 것도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작은 변화가 대격변을 초래할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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