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인면조’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해 ‘깜짝 화제’가 됐습니다. 인면조는 사람의 얼굴을 한 새를 뜻하는데요. 개막식 이후 인면조를 소재로 한 2차 창작물이 줄줄이 생산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번 개막식에서 인면조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한 무용수들과 함께 등장했지요. 고구려 고분 중 덕흥리 고분, 삼실총, 무용총 등에 인면조가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인면조를 등장시킨 연출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에 대항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인면조는 조선 후기 민화에도 등장하며, 고구려 뿐만이 아닌 백제 및 신라 문화재에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일반적으로는 주작, 봉황처럼 천년, 만년을 사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집니다.
그중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에 새겨진 인면조를 소개합니다. 미술사학자 주경미 박사는 2006년 동탁은잔에서 인면조를 찾아냈습니다. 주경미 박사가 <무령왕릉 출토 유물 보고서Ⅱ>(국립공주박물관, 2006)에 동탁은잔을 주제로 기고한 논문 중 인면조에 대한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동탁은잔 잔받침에 있는 인면조를 불교 전래 이후의 ‘가릉빈가’ 보다는 상서로운 동물(서수)로 해석하며, 동탁은잔이 중국에서 전래된 물건이 아닌 백제의 작품에 가깝다는 견해입니다.
■“1971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은 6세기 전반의 백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금속공예품이다. …동탁은잔은 은제 잔과 뚜껑, 동제 잔받침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연꽃의 바깥쪽 공간에는 꽃을 든 인면조, 사슴, 나무, 날아가는 새, 불타오르는 화염과 연꽃 모양, 용, 이름 모를 괴수 등 여러 종류의 문양이 있다. 이들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문양의 도상적 특징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그중에서도 인면조의 성격에 대해서는 해석하기 어렵다. 잔받침에는 용, 인면조, 사슴, 새 4마리, 괴수 등 다양한 종류의 서수(상서로운 짐승)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그릇 전체에는 인면조 1마리, 사슴 2마리, 용 4마리, 새 6마리 등이 확인되며, 잔받침 바닥의 인면조 맞은편에 있는 괴수는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동탁은잔에 표현된 것 중에서 가장 독특한 서수는 잔받침에 새겨진 인면조이다. 이 인면조는 사람 머리에 다리는 동물의 다리와 비슷하며 긴 꼬리를 가지고 있다. 인면조는 삼국시대 고분미술에 종종 등장하는데, 고구려의 경우에는 덕흥리고분, 삼실총, 무용총 등 여러 고분 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덕흥리 고분의 경우에는 명문이 있어서 이러한 인면조가 ‘천수’와 ‘만세’임을 알 수 있다. 천수, 만세라는 이름의 인면조들은 천년, 혹은 만년을 산다고 알려진 장생을 상징하는 서수로서의 존재들이다. 이러한 인면조의 표현은 삼국에서는 모두 다 찾아볼 수 있는데, 신라의 경우에는 경주 식리총 출토 금동식리에 표현되어 있다. 백제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에 모두 4마리의 인면조가 등장한다. 동탁은잔의 인면조와 가장 비슷한 예는 고구려 삼실총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인면조이다.”
■“동탁은잔의 인면조는 날개 앞쪽으로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특이하다. 이제까지 알려진 7세기 이전의 동아시아 인면조 중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불교의 전래 이후의 인면조는 ‘가릉빈가’로 보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백제의 인면조가 천추, 만세의 성격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불교의 가릉빈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용이나 이름 모를 새 등과 함께 등장하는 동탁은잔의 인면조는 그 형상이나 배경 등이 고구려 고분 벽화의 천추, 만세와 같이 장생을 상징하는 서수로서의 존재와 상통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연꽃처럼 보이는 꽃을 들고 있는 형태로 묘사된 이 인면조는 전통적 내새관, 혹은 세계관이 점차 불교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인면조는 아직까지 불교의 가릉빈가라고 불리기는 어려워 보이며, 선교에서 나타나는 장생을 상징하는 서수의 성격에 더 가깝다.”
■“동탁은잔에 표현된 인면조나 용, 서조 등의 도상은 중국의 화상전이나 문양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기는 하다. 다만 얼굴의 형태나 옷의 모습 등은 무령왕릉 동탁은잔의 표현과는 다르다. 남조의 인면조는 대부분의 경우 몸이 완전한 새로 표현된다. 오히려 동탁은잔의 문양 구성이나 양식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사성이 더 크다. 특히 여러 종류의 서수가 한 공간에 등장하며 나무와 꽃이 흩날리고 산악문을 배경으로 서수가 등장하는 구성 등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상계 표현과 상통한다.”
■“동탁은잔 문양 구성은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사상적 원류는 중국 남조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고구려에서 찾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인면조와 같은 구체적인 문양의 양식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고구려 5~6세기 고분 벽화에 표현된 이상향, 혹은 내세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릉빈가’는?
일각에선 평창에 등장한 인면조가 가릉빈가(迦陵頻伽)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가릉빈가는 고대 인도 신화와 불경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입니다. 가릉빈가는 히말라야에서 태어난, 자태와 소리가 모두 아름답고, 죽지 않는 불사조입니다. ‘능엄경’ ‘화엄경’에도 등장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때 가릉빈가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새이면서 생사의 순환을 보여주는 불멸의 새, ‘부처의 말씀을 전하는 새’로 여겨집니다.
주경미 박사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창 개막식에 등장했다고 하는 인면조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한 삼국시대 유물에 표현된 인면조를 비교적 잘 고증해서 만든 형상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에서 평창 인면조를 낯설어한다면, 그건 뭐 우리의 잊혀진 고대 문화 자체가 현대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낯선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적었습니다.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연출을 맡은 양정웅 연출가는 “퍼포먼스의 모티브는 고구려의 축제 등 고대신화에서 따왔다. 주로 모티브삼은 게 고구려 벽화인데, 거기에 인면조가 나온다. 원래는 불교 관련해 인도에서 온 이야기다. 인면조가 등장하는 장면은 천지인, 사람과 자연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우리는 상생을 아는 민족, 이미 평화를 아는 민족이라는 뜻을 담았다. 그 장면 제목도 ‘랜드 오브 피스(Land of Peace)’다”라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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