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80년 전 이란 여성은 "히잡을 쓰겠다"는 시위를 벌였다
SBS 2018.02.11. 09:06
이란에서 히잡 착용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용감한 1인 시위가 연이어 벌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히잡 착용을 정부가 강제하는 걸 반대하는 시위라고 불러야 한다.
이란 사법 당국이 시위 여성 29명을 추적해 체포하자 이란 대통령실은 '강제 히잡' 착용에 대한 이란 국민의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란 국민의 49.8%는 '히잡을 사생활 영역으로 간주'하며 이란 정부가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슬람 보수주의 세력의 강경 대응에 개혁 성향의 로하니 대통령이 어깃장을 놓은 형국이다. 이란에서 히잡 착용을 둘러싼 논란과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80년 전 이란 여성들의 시위 양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정반대로 "히잡 쓰기 운동"을 벌인 것이다.
● "히잡을 강제로 벗기지 마라"
철저한 친서방 정책을 펴던 이란 팔레비 왕조는 1936년 히잡 착용을 강제로 금지했다. 전통 관습을 제거하고 서구 문물을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상당수 여성들의 반발을 샀다. '왜 국가가 강제로 히잡을 벗기냐'는 것이다. 반발이 거세지자 몇 년 뒤 강제 금지 정책을 포기했지만, 정부의 지속적인 히잡 탄압 정책으로 히잡 착용은 후진성과 가난의 상징이 됐다. 히잡을 쓴 여성은 직업을 구하는 데 불이익을 받았고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은 히잡을 쓴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70년대 이란 여성들의 복장은 당시 파리나 런던 여성의 자유로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이슬람 혁명…"히잡을 쓰지 않으면 태형"
팔레비 왕조는 비리로 얼룩졌고 지나친 서구화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다.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사치로 왕가에 대한 지지도는 폭락했고 경제개혁 실패까지 겹치면서 호메이니가 이끄는 보수 이슬람 세력에 팔레비 왕조가 몰락한 것이다.
신정국가가 들어서자 히잡 착용은 다시 뜨거운 논란이 됐다. 이슬람 공화국은 신정일치의 상징으로 히잡 착용을 강요했다. 여성들은 히잡 거부 운동을 벌였지만 이란 정부는 히잡을 하지 않고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걸 범죄 행위로 간주하여 74대의 태형에 처하는 초강경 대응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팔레비 왕조가 히잡을 벗기길 강요했다면, 이슬람 공화국은 히잡 씌우기를 강요한 것이다.'
● 히잡은 '억압의 상징?'…'저항의 상징!'
이란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가 착용 여부를 강요할 때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거나 혹은 벗으며 일방적인 국가 권력의 강요에 대항했다. 특히 유럽의 잔인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중동에서 히잡이 서구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많다.
조선이 일제에 잔혹하게 당했듯이 19세기 말 이집트도 영국 제국주의의 주요 수탈 대상이었다. 여성 인권에 눈 뜨시 시작한 유럽인들이 코르셋, 거들 등을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상징으로 여기듯 그들의 시선에서 히잡은 상징적인 개혁 대상이었다. 서구식 교육의 혜택을 입었던 이집트 중상류 계층은 유럽 열강의 요구대로 히잡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발해 히잡 입기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건 젊은 여대생들이었다. 이집트 정부가 서양식 옷을 강요하고 영국 지배체제 하의 기득권 층은 이에 충실히 따랐지만 이집트의 독립을 주장하던 이집트의 젊은 여대생들은 서구식의 세속적인 의상을 거부하며 히잡을 쓰는 민중운동을 벌였다. 이집트 정부는 대학에서 히잡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집트 국민들은 이를 막아 냈다.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 것으로 생각됐던 히잡쓰기 운동은 이후 강력한 사회 정치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현재 이집트에선 히잡을 쓰는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히잡 착용 여부에 대해서 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가 히잡 착용 여부를 강제해선 안 된다는 걸 이집트 정부가 일찌감치 인정했기 때문이다.
터키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역사가 있다. 1923년 터키 건국 이후 철저한 세속주의 국가를 유지한 터키에서 기득권층은 군사독재 정부에 부역하는 서구파가 차지했다. 엄혹한 군사 독재 체제에서 민주화의 움직임을 주도한 건 이슬람 전통을 강조하는 신중산층이었고 이들 여성을 중심으로 히잡 쓰기 흐름이 시작됐다. 당시 히잡을 쓴 여성은 '신세대'이자 '의식 있는 지식인' 여성이었다.
이처럼 중동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히잡을 착용한 이슬람 여성들을 억압받는 존재라며 측은하게 바라보는 건 오만한 타자의 시선이다. 이란 여성들이 시위는 히잡 자체에 대한 거부 운동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정부가 뺏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권을 찾기 위한 싸움이다.
이대욱 기자idwook@sbs.co.kr
사우디 종교계 원로 "여성에 아바야 강요 안 돼" 파격 주장
연합뉴스 2018.02.11. 07:47(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계 원로이자 성직자가 여성에 아바야(목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검은색 통옷)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 관심을 끌었다.
1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우디 최고 종교기관인 원로종교위원회의 위원인 셰이크 압둘라 알무틀라크는 전날 현지 방송에 출연, "이슬람권에서 신실한 무슬림 여성 가운데 90%가 아바야를 안 입는다"면서 "사우디도 여성에게 아바야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우디 여성은 외출할 때 겉옷인 아바야와 히잡(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외국인 여성은 히잡은 쓰지 않아도 대개 용인되지만, 아바야는 입어야 한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이슬람 관습과 율법을 시행하는 사우디의 종교계에서 아바야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지역의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무슬림 여성이 아바야를 입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의무적이진 않다.
아바야는 여성의 신체 노출을 최소화하도록 목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긴 통옷 형태의 복식으로 중동의 아랍권에서 주로 입는다. 검은색이 일반적이며 회색이나 짙은 갈색일 수도 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는 아바야가 많지만, 레이스나 금·은색 줄을 넣어 멋을 낸 것도 있다.
셰이크 압둘라는 이날 방송에서 "아바야만이 이슬람적인 복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여성이 단정하게 보이는 다른 복식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올해 들어 급속히 진전하는 사우디 여성의 '권한'과 맞물린다.
사우디 정부는 올해 1월 축구경기장에 여성의 입장을 처음 허용했고 6월엔 여성에게 운전면허증도 발급할 예정이다.
또 여성의 교육과 사회진출도 장려한다는 게 사우디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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