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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45〉로봇의 위로

바람아님 2018. 7. 7. 08:24
동아일보 2018-07-04 03:00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이기자 독일 쪽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축구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 탄식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자 인간처럼 생긴 로봇 소피아가 메르켈 총리를 위로하려 들었다. “오늘 밤의 결과에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독일 축구는 국제경기에서 가장 성공한 팀 중 하나잖아요.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으니까요. 독일 팀은 아직도 세계에서 최고의 팀 중 하나예요.” 메르켈 총리는 소피아의 영어에 독일어로 답변했다. “그래요, 소피아. 길게 보면 당신 말이 맞아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 오늘은 우리 모두가 아주 슬프답니다.” 소피아는 인간의 슬픔을 논리로 감싸 안으려 했다. 불완전하지만 조금은 감동적으로.

이 모습은 40여 년 전에 발표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이백 살 먹은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에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로봇 앤드루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고 없는데 자신만이 200년이 다 되도록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유한한 생명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해체, 즉 죽음을 택한다. 죽어서라도 인간이 되고 싶어서다.

그의 인간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 가치가 있을까? 앤드루, 당신은 바보야.” 그러자 앤드루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면,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면, 나의 염원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니 그것도 가치가 있는 것이죠.” 인간성에 도전하는 로봇 앤드루의 염원이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인간이 대체 무엇이기에 인간이 되려고 하는 걸까.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일까.

앤드루가 그러하듯, 인공지능은 인간을 비추고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일종의 거울이어야 한다. 메르켈 총리에게 소피아가 그랬듯이, 인공지능은 인간을 돕고 위로하는 차원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로봇공학의 윤리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