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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墨子 (3) 경쟁에서 협력으로…‘兼以易別(편가름을 아우름으로 바꾸다)’ 강조

바람아님 2018. 7. 9. 09:11

(매일경제  2015년 04월 06일)


324329 기사의 0번째 이미지경쟁(전쟁)이 일상화되면 그것 이외의 다른 길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합의와 조정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해오던 관성 때문에

경쟁(전쟁)에 의지하게 된다. 이렇게 관습과 문화

그리고 법률과 제도만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에

이르기까지 삶의 틀이 한번 모습을 드러내면,

외부 자극을 받아 환경과 조건이 변해도 과거로부터

익숙한 틀이 그대로 살아남게 된다. 이처럼 과거의 틀이

관성으로 작용해 패턴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한다.
 
경쟁(전쟁)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힘을 키워야 하고,

그 힘을 키우려면 나의 역량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남을 공격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즉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논리가 생겨난다.

묵자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시대의 관성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성찰하고자 했다.

아울러 생존을 위한 길이 과연 전쟁 이외에 다른 것은 없는지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의문은 기업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보통 경쟁 업체는 제품 개발과 영업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이 선(善)인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동종 업체만이 아니라 이종 업체 간 협력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한번 전쟁에서 진 나라가 다음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전쟁에 의한 생존은 결국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상대를 완전히 멸망시키거나 대항할 의지를 철저하게 꺾어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힘을 길러 언젠가 다시

싸움을 걸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은 안전한 생존을 위한 좋은 길이 아니라 일시적인 길일 뿐이다. 결국 안전한 생존을 위해서는

전쟁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때문에 묵자는 사람들이 전쟁의 한계를 알면서도 다시 전쟁에 의존하게 될까 봐

“꼭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안전한 생존을 위한 다른 길은 의외로 쉽다. 내가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상대도 나를 공격하지 않으면 평화가 유지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바로 안전한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손쉬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전쟁에 의존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내가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대가 나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결국 전쟁으로 향하는 동시대 사람들 사고에는 나는 믿을 수 있지만 남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이 불신은 나와 남을 함께 묶어주는 공동의 가치가 부재하고 나와 남을 운명공동체로 여기지 않는 습관에서 생겨난다.


묵자는 동시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전제에서 출발해 새로운 공동의 가치를 세우고자 했다.

나와 남이 동일한 운명공동체에 속해 있고 공통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내가 남을, 남이 나를 공격할 이유가 없어진다.

묵자는 비유를 통해 이런 사고의 타당성을 밝히고자 했다.


내가 아무리 공격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나 자신을 침략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의 나라에 아무리 많은 재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다.

이처럼 나와 남을 단일한 공동체로 여기게 되면 내가 남을 공격해 힘을 약화시킨다든지,

남의 것을 빼앗아 나를 살찌운다든지, 나와 남을 구별하는 사고와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묵자는 이를 ‘나를 돌보는 것과 똑같이 남을 돌보라!’는 의미의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란 말로 강조했다.

위피와 위기를 구별하는 사람은 묵자의 이런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별하는 사고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의 반론을 따라가 볼 만하다.


묵자는 ‘위피유위기’에서 출발해 다시 독특한 개념을 내놨다. 겸(兼)과 별(別)이 바로 그것이다.

별은 ‘나누다’ ‘가르다’라는 뜻이고, 겸은 ‘아우르다’ ‘합치다’라는 뜻이다.

특히 겸(兼)자는 글자 안에 사람이 손(手)으로 두 포기의 벼(禾)를 움켜쥐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즉 겸(兼)자는 두 병(秉)자가 합쳐진 꼴이다.

묵자는 별과 겸에 애(愛)자를 결합해 별애(別愛)와 겸애(兼愛)의 개념을 만들었다.

별애는 사람이 혈연과 국가 등의 개별적 소속에 따라 타인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고,

겸애는 소속을 따지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묵자는 당시의 혼란과 전쟁이 결국 다른 소속들이 적대적 경쟁을 벌이면서 생겨났다고 봤다.

그의 해결 방향은 분명하다. 소속에 따른 무한경쟁을 소속을 초월하는 연대로 바꾸는 것이다.

그는 ‘겸으로 별을 바꾸자!’는 의미로 ‘겸이역별(兼以易別)’을 주장했다.

묵자는 겸이역별을 단순히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이런 노력의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묵자 집단의 용병화다.

약한 공동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강한 상대의 공격을 받는 것은 겸이역별에 어긋나는 일이다.

묵자 집단은 침략을 받아 위기를 겪는 약한 나라에 용병을 보내 공동방위를 실시했다.

이론과 실천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 집단은 자신들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 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묵자 집단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전위 조직이자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학문공동체였다.


묵자 집단의 이론과 실천은 당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주나라 천자가 정치·군사적 구심점 노력을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맘껏 유린하는 상황에서

묵자 집단은 공격받는 약자를 지켜주는 구세주와 같았다.

그래서 묵자보다 뒤에 활약했지만 역사적 사정에 밝았던 한비자는 묵자를 당시에 가장 잘나가는 학문,

즉 ‘현학(顯學)’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아무런 까닭 없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의 땅과 자원을 욕심내서 침략을 벌이려고 한다.

약한 나라는 주위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지만 아무런 호응이 없다.

대부분 나라가 강한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국제 질서는 이상보다 힘 위주로 유지된다.

그런 상황에서 묵자 집단이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는 강한 나라의 침략에 맞서 약한 나라의 위기를 구해주려고 했으니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묵자 집단의 빛나는 성과에 따른 백성들의 굳건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겸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컸다.

당시 비판의 목소리를 복원하면 다음과 같다.


“겸애의 가치와 방향은 분명 옳다. 하지만 사람은 가족과 국가처럼 자신의 소속 집단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겸애가 현실에서 보편적으로 실천될 수 있을까?”


겸애가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의 집 아이보다 내 아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주위 사람이 잘사는 것이 보이지 않는

먼 곳 사람의 사정보다 더 절실하고, 내 나라 사람의 안전이 다른 나라 사람의 생명 유지보다 더 관심이 많다.

사람이 이성적으로는 겸애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선 겸애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묵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유 실험을 제안했다.

어떤 사람이 사신의 임무를 띠고 조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를 위험한 길을 떠난다고 가정해보라.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별애론자와 겸애론자 중 누구에게 자신의 가족을 부탁하고 길을 떠날까.

묵자의 답은 이렇다. 사신이 겸애론자면 당연히 가족의 신변을 겸애론자에게 부탁할 것이다.

설혹 사신이 별애론자라고 하더라도 겸애론자에게 가족의 안전을 부탁할 것이다.

별애론자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서도 오히려 그 가족을 해치고 재산을 빼앗을 수 있지만 겸애론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신이 어떤 가치를 믿느냐에 상관없이 겸애론자를 선택한다면, 겸애는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

묵자는 전쟁의 시대를 살면서 적대적인 경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경로의존성을 타파하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묵자가 기성 사상가와 달리 경쟁보다 연대에 주목하게 된 배경이다.
 

오늘날 우리는 변화와 창조를 외치면서도 늘 그렇게 살아온 관성에 따라 반대로 나아가는 역설적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

창조의 시대에 모방과 답습의 패턴을 따르는 꼴이다.

묵자라면 사람들에게 시대의 전체를 뒤집는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물질적, 제도적 장치까지

대비하라고 주문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변화를 일굴 비전만이 아니라 용기와 실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볼 일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 일러스트 : 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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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쟁에서 협력으로…‘兼以易別(편가름을 아우름으로 바꾸다)’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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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인도 나를 돌보듯…‘兼愛(겸애)’의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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