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 중국이 'G2'라는 환상에서 깨어날 때

바람아님 2018. 8. 30. 09:47

(조선일보 2018.08.30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중 경제 전쟁 통해 과장된 中의 민낯 드러나
'G2' 허구에 사로잡힌 親中 환상·중국 공포 버려야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중 무역 마찰이 경제 전쟁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게임의 승패는 이미 미국의 압도적 우세로 기울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달 초 미국이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곧바로 중국이 동일한 조치를 취할 때만 해도 막상막하 같았다.

하지만 미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추가 관세를 매기며

다시 보복하자 모든 게 조용해졌다. 중국은 재보복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는 중국이 선(善)해져서가 아니다.

양국의 국력 격차가 워낙 현격해 무역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국이 말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방식의 대등한 보복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역 전쟁 와중에도 미국 경제는 완전 고용을 구가하며 13년 만에 처음 올해 3%대

성장률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반면 중국 경제는 생산·소비·투자가 급락세로 돌아서며 비상등이 곳곳에 켜졌다.

상하이 증시의 종합주가지수가 연초 대비 25% 정도 급락했고 지난달까지 중국 전체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이 23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처음부터 중국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인 게 분명했는데 이를 깨닫는 데 한국에는 왜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최근까지 미·중 경제 마찰 관련 연구보고서나 언론 보도는 누가 봐도 양국이 엇비슷한 힘을 갖고 있다고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이는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 중국에 대한 선입견이 우리 사고에 뿌리내린 결과이다.


중국에 대한 환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중국이 너무 크다'는 위압감이 핵심 동인이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팽창은 규모의 압력을 배가시켰다. 나아가 중국을 흠모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다.

더 결정적인 것은 미국이 중국에 선사한 'G2'라는 용어였다.

전 세계 어디에도 'G2'를 한국만큼 입에 달고 사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 미국이 중국을 'G2'로 부르며 중국을 치켜세운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한 만큼 대국으로서 국제적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었다.

미국의 노림수를 간파한 중국은 이 용어를 거부했다.

최근 중국 외교부장이 "중국은 개도국에 불과하다"고 읍소한 것은 이런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중국이 거부한 용어를 한국이 애용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세상에는 가장 강대한 국가 둘이 있고, 그들의 힘이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국내에 뿌리를 내렸는데,

이번 미·중 경제 전쟁은 '중국=G2'라는 한국인의 환상을 깨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노리는 최종 목적은 축적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행사하려는 영향력의 축소이다.

결국 세계적 패권(覇權)을 놓고 벌이는 파워 게임이다. 여기에는 모든 수단이 총동원될 것이다.

관세 부과 같은 통상 마찰은 서막이고 위안화 환율과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겨냥한 통화 전쟁이 뒤이을 것이며,

중국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과 자유화가 종착지인 금융 전쟁까지 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여기에 개혁이 지지부진한 중국의 자체 모순이 더해지면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엇보다 허황된 'G2 신화'에 기초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일반인이 근거도 없는 공중증(恐中症·중국 두려움)에

더 이상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 노선 채택 후 한 번도 경제 위기를 경험한 적이 없다.

치명적인 경제 위기에 처한 후 그것의 극복 과정을 보면서 중국 경제의 능력을 판단해도 늦지 않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올해 초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경제 단위로서 일인당 국민소득(GDP) 3만달러가 넘는 세계 7개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경제는 과잉 투자 후유증 극복(1980년대 초), IMF 외환 위기 돌파(90년대 말) 등

산전수전을 겪었다. 질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경제 수준은 비교가 안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우리의 번영이 해방 후 자본주의 최강국인 미국 그리고 또 다른 강국 일본과의 영향 속에서 가능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단순히 대륙 세력, 해양 세력의 이분법이 아니다.

가장 부유하고 강한 국가로부터 배웠고 그들과 긴밀히 교류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향후 감정적인 친중(親中), 공중(恐中), 나아가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물론,

미국과 일본이 왜 계속 중요한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