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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95] 어쩌다 발견

바람아님 2018. 11. 7. 08:16
조선일보 2018.11.06.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 토머스 퀸 교수는 연어를 연구하는 어류학자다. 어느 날 그는 불곰의 포식 현황을 조사하느라 강물에서 건져낸 연어 사체 때문에 주변 나무들의 성장률이 달라지는 걸 감지했다. 20년 동안 연어 21만7055마리가 던져진 강변 쪽의 나무들이 훨씬 크게 자랐다. 평생 물고기만 연구하던 그는 최근 이 뜻밖의 나무 논문을 생태학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미국생태학회지에 게재했다.


알렉산더 플레밍은 실험실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을 연구하던 세균학자였다. 1928년 가을 잠시 휴가를 다녀온 그는 세균을 배양하는 유리 접시 일부에 푸른곰팡이가 피어 있는 걸 보고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된다. 푸른곰팡이가 피어 있는 접시에는 포도상구균의 증식이 멈춘 것을 보고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다. 위대한 항생제의 시대는 이렇게 우연히 시작됐다.

뜻밖의 발견으로 인해 연구의 향방이 바뀐 예는 과학계에 수두룩하다. 오늘날 발기 부전 치료제로 널리 복용되고 있는 비아그라가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던 약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듀폰(DuPont)은 냉매 연구를 하다 뜻하지 않게 음식물이 들러붙지 않는 테플론 프라이팬을 개발했다. 강력 접착제 수퍼 글루(Super Glue)는 내열 도료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렌즈가 자꾸 들러붙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우연히 얻어걸린 횡재였다. 찍찍이(Velcro)는 등산을 즐기던 스위스의 엔지니어가 반려견의 털에 붙은 씨앗을 보고 발명한 것이다.


내가 박쥐를 연구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한 일이었다. 나는 열대 정글에서 연구할 때 주로 바닥에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 둥치를 뒤진다. 오랫동안 정글 바닥을 기다 보면 허리가 뻐근해지기 때문에 이따금씩 일어서서 하늘을 올려다봐야 하는데, 바로 그때 나무 이파리를 변형해 텐트를 만들고 그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과일박쥐를 발견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건 탁구공이 아니라 과학자의 눈망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