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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98] 영웅만색(英雄晩色)

바람아님 2018. 11. 29. 05:49
조선일보 2018.11.27.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같은 날에 태어난 두 영웅이 있었다. 이소룡과 지미 헨드릭스는 각각 1940년과 1942년 11월 27일에 태어나 너무도 젊은 나이인 32세와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사내아이로 크면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질러대는 이소룡 특유의 괴성을 흉내 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쌍절곤을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고 사실 살 돈도 없던 나는 손수 만들기로 했다. 대나무를 한 자 길이로 잘라 구멍을 뚫고 노끈으로 묶은 허접스러운 쌍절곤이었지만, 웃통을 벗어 던진 채 거울 앞에 서서 겨드랑 밑으로 넣었다 뺐다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타가 너무 치고 싶어 허구한 날 빗자루를 가슴에 품고 흔들던 어린 지미 헨드릭스는 이웃이 버린 한 줄밖에 없는 우쿨렐레로 연습을 시작해 끝내 최고의 기타 연주자가 되었다. 그러나 1966년 가을 런던 데뷔를 시작으로 1969년 우드스탁(Woodstock)의 간판 스타로서 정점을 찍고 1970년 9월 18일 숨을 거두기까지 그의 음악 인생은 기껏해야 4년 남짓이었다. 그는 진정 그가 한때 몸담았던 밴드 이름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살고 떠났다.


지미 헨드릭스가 한창 음악계를 뒤흔들 무렵, 영화관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질끈 다문 입이 우리를 불러댔다. 그의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전의 서부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장르를 열어젖히며 자연스레 우리를 이소룡의 호쾌한 액션으로 이끌었다. 젊음을 불사르기에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참으로 멋진 시기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문화의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아이콘들이었다.


이소룡과 헨드릭스는 일찍 떠났지만 이스트우드는 구순(九旬)을 코앞에 두고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요절한 영웅의 '철 지난 모습[晩色]'도 시리도록 곱지만 오래도록 곁에 있어주는 영웅의 만색도 멋지다. 우리에게도 너무 일찍 떠나 그리운 배호·유재하·김현식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 곁을 지켜주는 조용필이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