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T 화재 사건으로 우리는 초(超)연결 사회가 안겨준 어처구니없는 단절을 경험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물론 집 전화와 TV까지 한 묶음으로 엮는 바람에 그야말로 불통(不通) 그 자체였다. KT는 이럴 때를 대비해 우회 회로를 마련했으나 그마저 작동하지 않아 속수무책이었다고 해명했다.
개미 사회는 공정 과정을 한꺼번에 여럿 운용해 어느 한 공정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다른 공정들의 작업 속도를 올려 전체 과업에 지장이 없도록 조율한다. 이를테면 병렬 공정(parallel process)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오로지 단기간의 결과만 중시하는 직렬 또는 순차 공정과 대비되는 전략이다.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나는 남미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잎꾼개미를 채집해 와 '개미세계탐험전'에 전시했다. 우리는 전시(展示)에 필요한 수보다 더 많은 군락(群落)을 확보했다. 만일 전시 군락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다른 군락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전시실 뒤편에 복수의 예비 군락을 사육하고 있다.
우리는 국립생태원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병렬 공정을 채택했다. 버젓이 전시 온실이 있는데 왜 재배 온실을 또 만들어 세금을 낭비하느냐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 덕에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는 늘 다양한 식물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 시설의 식물들은 아무리 잘 관리해도 수시로 죽어나간다. 희귀한 식물이 죽었을 때 허둥지둥 그 식물을 구하러 해외로 달려갈 게 아니라 재배 온실에서 키우고 있다가 곧바로 옮겨 심을 수 있어야 전시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직렬로 연결한 크리스마스 조명은 전구 하나만 고장 나도 전체가 꺼져 버린다. 회로가 좀 복잡해지더라도 전체 또는 일부라도 병렬로 연결하면 한꺼번에 깜깜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는 개미 사회가 인간 사회보다 훨씬 진화했다. 우리도 이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병렬화할 때가 됐다. 질 높은 삶은 속도보다 안전이 담보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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