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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IMF 시절 '換亂 주범'으로 구속됐던…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바람아님 2018. 12. 23. 21:42

(조선일보 2018.12.17 최보식 선임기자)


"경제부총리 바꿔 해결되면 무슨 걱정있겠나… 근본이 잘못돼 있는데"


1997년 말 IMF 사태 전후를 다룬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은 무능하게 그려진다.

김인호(76) 당시 경제수석을 만나 영화 얘기를 꺼내니,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 최소한의 사실 고증도 없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나.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는 것인지 제작 의도가 불순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함께 '환란(換亂) 주범'으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물론 재판에서는 무죄였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은“이 정부는 자기는 개혁 안 하면서 남 보고는 개혁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은“이 정부는 자기는 개혁 안 하면서 남 보고는 개혁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1996년 말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에 가입한 지 1년 만에 IMF 사태를 맞았다.

정부 요직 인사들이 이렇게 앞을 못 내다봤나?

"그전까지 정부가 고성장 정책을 해오자 기업은 과도한 확장 경영으로 따라갔다.

금융권은 기업 평가 없이 무분별 신용을 제공해 막대한 부실 채권을 안았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기관은 제대로 감독·관리하지 못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누적됐다.

근본을 바꾸는 수술을 않는 한 누가 그 자리를 맡든 같은 결과를 맞게 돼 있었다.

YS 시절에 운이 좋아 안 왔으면 DJ 정권에서 왔을 것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개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내가 경제수석이 되기 전부터 YS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금융개혁위원회'를 구성해놓고 있었다.

금융개혁의 시급성을 알고 있었다. 경제부총리, 나, 한은총재, 금융개혁위원장 등 소위 '4인 회담'에서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제도의 개혁 내용에 합의했다. 약간의 수정을 거친 법률안이 국회로 넘어갔다.

야당인 국민회의도 여기에 동의했다. DJ까지 오케이 했다. 하지만 한은(韓銀)노조 등이 들고일어나자,

야당이 발을 뺐고 여당은 눈치를 봤다. 벼랑 끝까지 몰린 경제 상황인데도 결국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그전에 한보·기아차 등 대기업의 연쇄 부도로 실물경제 상황이 악화됐다.

정부가 이에 발 빠르게 대처를 못 해 결국 외환 위기까지 간 것이 아닌가?

"달러가 부족해서 외환 위기가 왔다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제발 돈 갖다 쓰라'며 빌려줬다. 빚을 안 내고 기업 하는 경우가 없다.

어느 날부터 새로 빌려달라는 것을 안 빌려줄 뿐 아니라 있던 빚의 만기 연장, 소위 '리볼빙(revolving)'이 안 되기 시작했다.

새로 안 빌려주고 기존의 부채는 다 갚으라고 하면 안 무너질 기업이 없다.

외환 부족이 문제가 돼서 이런 위기가 온 게 아니라, 신뢰의 위기가 와서 외환이 빠져나갔다. 이게 핵심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1997년 11월 7일 오후 4시에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외환 위기와 관련해

비밀대책회의가 있었던 게 맞나?

"이 추세로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 큰일 나겠다 싶어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의 실무진을 불러 대책회의를 했다.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급한 불을 끄고, 일본과 통화 스와프를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게 안 되면 IMF도 검토하는 걸로 했다. 공식회의에서 그때 처음으로 'IMF'라는 말이 나왔다."


―다음 날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담화에는 대선과 관련된 내용만 있고 경제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이라면 외환 위기 상황에 대해 국민과 정치권에 협조를 구해야 했지 않나?

"잘 알다시피 YS의 최대 관심사는 정치였다. 그렇다고 경제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날 IMF를 처음 언급했을 때 YS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했다.

11월 14일 IMF로 가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서 강경식 부총리가 '이렇게 하면 그동안 아무리 잘한 것이 많더라도

문민경제는 IMF 구제금융으로 끝났다고 평가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말에 YS가 혹시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했다.

그때는 임기가 서너 달 남았으니까 YS가 '이대로 버텨보자. 다음 대통령이 죽을 쑤든 밥을 짓든…'이라고 할 수 있었다.

DJ에게 넘겨버릴 수도 있었는데 이 점에서 YS가 훌륭했다고 본다."

―11월 16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비밀리에 방한했는데.

"캉드쉬가 한은 총재에게 외환보유고 상황을 듣고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많다'고 했다.

이어 강경식 부총리가 경제 개혁 방안을 설명하자 '전적으로 옳다'며 지지했다.

이 자리에서 IMF행(行)의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다. 캉드쉬는 한국 경제를 위한 '위장된 축복'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이틀 뒤 금융개혁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여당조차 표(票) 때문에 태도를 바꾸었다."


―정치권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뜻인가?"

당시 가장 부패한 기업이었는데 '국민기업'의 탈을 쓴 기아차의 김선홍 회장은 해야 할 구조조정은 안 하고 정치권을

쫓아다녔다. 이에 정치권은 '왜 국민기업을 죽이느냐'고 정부와 금융기관을 압박했다.

그 첫 줄에 김대중이 있었고 이회창도 질세라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상황 때문에 'IMF'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강경식 부총리는 '차라리 가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한 적이 있었다.

고통이 따르지만 IMF의 손을 빌려 경제 체질 수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본 것이다."


―금융개혁법 처리가 무산된 다음 날 당신과 강 부총리의 사표가 수리됐다.

"그전에 YS에게 '경제팀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DJ의 결심에 달렸다.

대통령께서 DJ를 설득해달라. 금융개혁은 경제부총리가 아닌 대통령의 사업이다'고 직언했다.

하지만 DJ에게 끝내 전화를 걸지 않았다.

IMF 사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우리가 직시하고 해결 방안이 있는지,

실행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국제 금융계의 심판이었다."


1997년 12월 3일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총재가 IMF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
1997년 12월 3일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총재가 IMF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 /조선일보 DB


―IMF행이 결정되고 협상을 앞둔 시점에 경제팀을 교체한 게 올바른 판단이었나.

전투가 한창 치러지는 와중에 장수를 바꾼 셈이다.

"협상 작업을 시작한 경제팀이 최종 발표까지는 하고 난 뒤에 개각했으면 그 많은 혼란이 없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다."


11월 19일 신임 임창렬 부총리는 기자의 IMF행 질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잘랐는데?

"임창렬 부총리가 그렇게 나흘을 허비해 IMF의 불신을 샀다. 그 뒤 DJ는 '대통령 당선이 되면 재협상하겠다'고 나왔다.

심각한 불신이 가중된 것이다. 이 때문에 IMF가 초(超)고금리와 긴축재정 등 과도한 협상 조건을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과 강경식 부총리가 IMF를 지연시켜 재앙을 초래한 '환란 주범'으로 구속됐다.

재판에서는 무죄로 판정났지만.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했다. 그랬으면 오늘의 한국 경제가 이렇지 않을 것이다.

DJ 정부는 교훈이 아닌 희생양을 찾았다.

당시 YS는 건드릴 수 없고, 각본에 따라 강경식과 나를 '환란 주범'으로 만들었다.

분노한 민심을 풀어줄 희생양을 만드는 식이 되면서 정말 밝혀져야 할 것이 안 밝혀졌다."


―기업 줄도산에 대량 실직 사태가 났다.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었다.

법적인 책임을 떠나, 돌아보면 '그때 이렇게 해야 했는데' 하는 대목은 없나?

"전지전능한 사람이라면 다른 묘안이 있었는지 모르나, 내 머리로는 최선을 다했다.

사실은 전문가들에게서 바로 이런 질문을 듣고 싶었다.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

'그런 정책이 옳았나?' '다른 대안은 없었나?'

토론했으면 국가 장래를 위한 축복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환란 주범'을 만드는 걸로 끝냈다. 지금은 어떤가. 적폐몰이는 더 심해졌고 더 나쁘게 반복되고 있지 않나."


―현 정권 얘기가 나왔으니, 무엇보다 경제에서 무능과 잘못된 아집을 드러내고 있다. 왜 이렇다고 보나?.

"정부가 가장 도덕적이고 유능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시장이 해결할 문제를 정부가 모두 해결하려고 한다.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정부가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 자만'이라고 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나 기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멈춰야 한다."


―이번에 경제 수장이 바뀌었으니 경제 분위기가 좀 달라질 것으로 보나?

"잘못된 경제정책을 안 바꿀 거면 경제부총리를 왜 바꿨나. 전임자 김동연이 무능해서 바꿨다고 하든지,

아니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민심 수습용으로 부총리 목을 자른 것이라고 설명하든지….

사실 김가가 하느냐 홍가가 하느냐로 경제가 좌우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경제정책의 근본이 잘못돼 있는데."


―근본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 시스템이 달라진다.

기회는 평등해야겠지만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와 페널티가 이뤄지는 게 자유시장경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열심히 노력하고 잘하려고 하겠나. 지금 우리는 사실상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에서 살고 있다."


―'사회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현 정권은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게 사회주의적 발상이 아니면 뭔가.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기업인데, 정부가 직접 고용을 창출하겠다며 공공부문 일자리를 세금으로 대폭 늘렸다.

이 정부는 대기업 개혁을 떠드는데, 자기는 개혁 안 하면서 남보고 개혁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개혁하려면 정부부터 먼저 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도 보완이 필요하지 않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의 문제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고 모든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다.

가령 국민연금안에 대해 대통령은 '적게 내고 많이 받도록 해주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자선사업이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 세상에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것은 경제 세계에선 없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게 경제의 출발점이다. 이 말을 이해 못 하면 경제를 다룰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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