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26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내놓을 명함 없으면 공적 활동 잘 못하고 경조사비 지출하며 분주한 이유 뭘까
자기 삶의 '본질' 성찰하며 상대화해 봐야
현직에 남아있는 내 친구들은 이제 거의 없다. 죄다 꺼진 불이다.
거참, 그 탁월했던 친구들이 한순간에 멍청해진다. '명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내들의 상호작용은 명함을 내놓는 것부터 시작된다.
명함을 주고받기 전, 두 사람의 표정은 별 차이 없다.
그러나 주고받은 다음에는 두 사람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낮은 사람'이 반드시 웃는다. 희한하다.
명함이 있어야 한국식 상호작용의 원칙이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내놓을 명함이 없으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수시로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전제들을 성찰하며 상대화해야 명함이 사라져도 당황하지 않는다.
'탈맥락화(Dekontextualisierung)'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탈맥락화'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철학에서는 '자기 성찰'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라 한다.
미술에서는 '추상(Abstraktion)'이라고 한다.
회화는 대상의 정확한 모방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켜왔다.
그러나 사진이 나오자, '재현'의 회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변화의 시작은 세잔이었다.
그는 고향의 '생트 빅투아르 산'만 80여 점 그렸다. 실제 산과는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는 '안 예쁜 풍경화'였다.
이른바 추상회화의 등장이다.
표현주의적 흔적을 미처 지우지 못한 칸딘스키의 뒤를 이어 나타난 말레비치, 리시츠키의 러시아 구성주의는
더욱 과감해졌다. 대상을 기하학적 단위로 쪼갰다. 기하학적 단위로 해체된 대상은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었다.
'창조적(creative)'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세상을 '창조(creation)'한 신처럼 인간도 자신의 삶과 세계를 '창조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시도는 두스뷔르흐, 몬드리안의 '데 스틸(De Stijl)'을 거쳐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라 할 수 있는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로 이어졌다.(내년은 독일 바우하우스 창립 100주년이 된다.)
단순화하여 해체해야 재구성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내 일상의 행동을 규정하는 맥락 (脈絡,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에 관해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단순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문자로 매일 날아드는 경조사의 본질에 관한 질문 같은 것들이다.
경조사는 한국인의 일상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한다. 날아든 친구 부모의 부고에 마음이 급해진다.
슬퍼할 친구의 얼굴이 밟혀서이다. 그러나 졸업 후, 수십 년간 두어 번 만났을 뿐인 고등학교 동창의 빙부, 빙모의
장례식에는 도대체 왜 가야 하는 걸까? 자랄 때 용돈이라도 줬던 기억이 있는 친구의 자녀가 결혼한다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 한다. 정말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러나 축의금 내고 얼굴도장만 찍고 올 직장 상사 자녀 결혼식에 가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인간은 ‘추상’하면서부터 창조적이 되었다. /그림=김정운
텅 빈 내 부모의 장례식, 초라한 내 자녀의 결혼식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많이 치사하지만) 그동안 지출한 경조사비를 언젠가는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닌가?
겨우 이런 이유로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매번 그렇게 길바닥에 버려야 하는가?
부모 세대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장례식, 우리 자녀들의 결혼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며칠 전, 가족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식은 절대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바로 화장하고, 장례식에 쓸 비용으로 가깝게 지냈던 몇 사람들만 아주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초대해 내 흉을 보며
즐거운 시간 보내는 걸로 하자고 했다.
내 아들들의 결혼식도 내 화실 '美力創考'가 있는 섬 방파제에서 '그리스식 웨딩'으로 하자고 했다.
정말 기뻐해줄 사람만 최소한으로 초대하고, 하객들은 반드시 섬에서 1박2일을 지내야 한다.
그 비용은 전부 내가 부담한다. 지금부터 적금 들어 준비하겠다고 했다.
(물론 내 장례식은 내 맘대로지만, 아들들의 결혼식은 그저 내 제안일 따름이다.)
아무튼 '관계 과잉'의 삶을 수시로 '탈맥락화'해야 내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
타의에 의해 '탈맥락화'되는 순간에도 그리 당황하지 않는다.
탈맥락화를 위한 추가 질문! 저출산이 큰 문제라고 한다.
국가가 돈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과연 돈이 본질일까?
아이를 낳지 않으면 국가가 없어지는 걸까? 인구가 줄면 외국의 이주민들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들의 자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인'이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독일은 터키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의 이주 노동자 자녀들이 '독일인'이 되어 빈자리를 채운다.
어차피 히틀러가 강요했던 '순수한 독일인'은 없었다.
그렇게 배타적인 일본도 이제 내놓고 '이민 국가'의 길로 들어섰다. 어쩔 수 없다.
본질적 질문 하나 더.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 그러하다면,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과연 해야 하는 걸까?
'우리 민족끼리'라는 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하도 철렁해서 하는 생각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아들들이 더 이상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한
'평화를 위한 통일'이 더 미래 지향적이고 설득력 있는 건 아닐까?
며칠 전 둘째가 논산훈련소에 입대해서 그런다. 이렇게 추운데….
아내는 "큰아들은 훨씬 더 추운 철원에서 훈련받았는데, 논산이 무슨 걱정이냐"며 돌아눕더니 이내 코를 곤다.
젠장, 매번 나만 잠 못 자며 걱정한다. 매번 나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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