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간이었던 율곡 이이 역시 선조 임금이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사표를 냈다. ‘신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신다면 다시는 소신을 부르지 마옵소서’라고까지 한 것을 보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던 모양이다(『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김준태 지음). 굳이 사직서까지 낼 것도 없었다. 정승 허조는 하도 반대를 많이 해 세종으로부터 “고집불통”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세종은 대소사에서 꼭 허조의 의견을 물었다.
서구에도 소신을 지킨 각료는 허다했다. 지금도 그렇다. 지난달 물러난 제프 세션스 미국 법무부 장관은 수사의 공정성을 지키려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움을 샀다. 트럼프가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던 게 화근이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에 반발해 며칠 전 사표를 던졌다. 그는 트럼프가 나토 무용론을 펼쳤을 때 “아니오(No, President)”라고 당당히 맞서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그는 “산업자본이라고 대못질해서 금융산업에 동원하지 못하게 해놓은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등 정권에 맞서는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반골’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신임했다. 결국 그는 최초로 임기 3년을 채운 금감위원장이 됐다.
요즘은 정권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고위 관료들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정권의 정책에 흠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고용 문제는 성공하지 못했다”(문재인 대통령, 12월 11일 국무회의)는 등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도 직언은 온데간데없다. 소상공인들이 “못살겠다”고 비명을 질러도 정권 뜻대로 묵묵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관료만 눈에 띌 뿐이다. 그래서 할 말은 하는 소신 관료들이 그립다. 그 말을 경청하는 군주와 대통령은 더 그립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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