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송년 모임의 화두는 단연 ‘어게인(Again) 노무현?’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건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이었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한쪽은 있는 말, 없는 말 총동원해서 때려댈 테고, 다른 쪽은 예전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버틸 테니 결과가 궁금해진다. 얼마 전 유시민까지 출전 선언했으니 이로써 흥행카드는 하나 더 늘었다. 이 주제야 저마다 가슴속 용솟음(?)치는 말이 있을 테니 각자 알아서 판단토록 하자.
□ 다른 화두는 ‘나’ 에세이 열풍의 지속 여부다. 궁금해서 서점엘 가봤다. 대충 둘러본 제목만 해도 이렇다.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이 먼저예요’ ‘오늘의 중심은 나에게 둔다’ ‘나는 오늘 행복할거야’ ‘딱 1년만, 나만 생각할게요’ 등. “연말쯤이면 이런 에세이들이 제법 나오고, 판매도 그럭저럭 잘되는 편”이라는 게 교보문고 측 설명이다. ‘나’를 내세운 책은 헬스장이나 영어학원 등록, 금연 선언처럼 연말연초에 흔한 ‘결심 산업’ 중 하나인 셈이다.
□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중략)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는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이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의 한 구절이다. 상처 주는 사람보다도 더 무섭고 위험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겠노라 으르렁대는 사람이다.
□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나만큼은 절대 상처받지 않아 마땅하단 얘기는 자신만큼은 특권적으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얘기 같다. 나를 내세운 책의 인기가 이해는 되지만 동의는 안 되는 지점이다. ‘상처 경쟁’ ‘억울함 레이스’보다 먼저 자신의 말과 행동부터 한 걸음 뒤로 물리는 건 어떨까. 관계란 상호작용인데 상처를 오직 ‘받기’만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해보고, 나 또한 상처 주는 존재임을 ‘확신’했으면 좋겠다. 그 의심과 확신 사이에 깃드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내년 말 송년의 화두는, 그런 의미에서의 ‘예의’였으면 좋겠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mailto:amorfati@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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