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1.19 이한수 기자)
보수와 진보, 국민과 이민자…
정치인들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 싸움 부추겨 권력을 강화하기도
우리 대 그들
이안 브레머 지음|김고명 옮김|더퀘스트|272쪽|1만7000원
'우리 대 그들(Us vs. Them)'로 편을 나눈 행위를 그저 '악(惡)'이라 규정할 순 없다.
가까운 이웃이나 생각이 비슷한 이들을 친근하게 느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멀게 느끼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정당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다수 정치인은 '우리'와 '그들'의 싸움을 부추겨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삼기도 한다.
저자는 미국 후버연구소 최연소 교수와 시사주간지 '타임' 편집장을 지내고
현재 글로벌 정치 리스크 연구 및 컨설팅 기업인 유라시아그룹 회장으로 있다.
그는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일을 무조건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갖는 두려움의 근거는 무엇이며,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의 행태는 어떻고,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글로벌 시각으로 고찰한다.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대립시켜 지지자를 결집하고 인기몰이를 꾀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정치 기술이다.
독재자는 '그들'을 두려워하고 꺼리는 '우리'의 정서를 이용해 콘크리트 지지층을 만들고 자신의 통치 기반을
강화한다. 저자는 남아공을 비롯해 나이지리아·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멕시코·베네수엘라·
러시아·인도·중국 등 열두 나라를 분석한다.
남아공의 정치가 인류에 빛을 던진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초 아파르트헤이트(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인종차별 정책)를 평화롭게 종식하고 민주국가로 발전하는 길에
들어서게 한 넬슨 만델라의 공로는 20세기 정치의 최대 업적이었다.
덕분에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선거 때마다 큰 어려움 없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부패가 만연하면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남아공 15~35세 인구 2000만명 중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620만명에 불과하다. ANC는 이를 '그들' 탓으로 돌린다.
외국인이 남아공의 풍부한 자원을 훔쳐가고, 백인들이 토지와 부의 상당 부분을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수 정치 지도자는‘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한다. 사진은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미군 병사들이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오려는 멕시코 주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모습. /AP 연합뉴스
민주국가에서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정치는 나타난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 주장했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갑니다. 그들이 우리 문화를 오염시킬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살인마도 섞여 있습니다."
이민자인 '그들'이 프랑스 국민인 '우리'의 기반을 흔든다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를 확실히 분리하려면 둘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방법이 있다.
심리적 장벽뿐 아니라 실제 장벽을 세우는 일이다. 모든 장벽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접경지대에 약 700㎞에 이르는 장벽을 쌓았다.
장벽 안의 1인당 소득은 3만5000달러인 반면 장벽 밖은 4300달러에 불과하다.
이를 무너뜨린다면 장벽 안 '우리'의 삶의 터전이 무너질 수 있다.
트럼프가 멕시코 접경 지역에 장벽을 쌓으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굳건한 지지층이 있다.
장벽은 평범한 이들이 갖는 공포 때문에 생긴다. 이를 나쁘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장벽을 쌓는 보호주의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작아진 파이를 지키기 위해 두꺼운 장벽을 더 쌓겠다고 약속하는 강성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인기를 끄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후에는 '우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우리 안에서 '그들'을 만들어내는 일까지 정당화할 수 있다.
저자는 "튼튼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더 안전하고 번영하는 국가를 이룩하고자 한다면 그런 수법은 한심하고
위험한 협잡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계약을 재작성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직장, 공공장소에서
각양각색 사람들이 잘 어우러지도록 유도할 장려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국 이 일은 정치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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