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2.03 한현우 논설위원)
한 통신 회사가 가족끼리 스마트폰 데이터를 주고받는 상품 광고에 이런 문구를 썼다가 곤욕을 치렀다.
"아들, 어디 가서 데이터 굶지 마." "딸아, 너는 데이터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하더라."
그러자 소셜미디어 등에서 "성차별적 기업의 서비스에서 탈퇴하겠다"는 글이 퍼졌다.
"아들은 혹여나 굶을까 걱정되는 사람, 딸은 부모 등골 빼먹는 존재로 가정한 광고"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회사 측은 '성 인지(認知) 감수성(gender sensibility)'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광고를 거둬들였다.
▶'젠더 감수성'이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반대편 성의 처지에서 어떤 사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 여성 대회에서 처음 쓴 개념으로,
한국에서도 성범죄 판단을 비롯해 일상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성추행 피해자에게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게 문제"라고 말하면 성 인지 감수성이 아예 없는 것이다.
범죄 책임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은행은 안내 데스크 직원을 뽑으면서 '키 163㎝ 이상, 승무원 출신 우대'라고 공고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인 데다가 외모로 지원자를 차별한다는 이유였다.
요즘 여성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은 '결남출'이라고 한다.
면접에서 '결혼, 남자 친구, 출산 계획'을 물으면 그 회사의 성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힌 데에도 성 인지 감수성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 가해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함께 와인바를 갔다고 해서 합의된 성관계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작년 대학교수 성희롱 사건에서 이 개념을 언급하면서 성범죄의 새 판단 기준으로 부상했다.
다만 형사법상 '무죄 추정' 원칙이 성범죄 사건에서만큼은 '의심스러운 때는 피해자에게 유리하게'로 달라지는 것이
옳으냐는 반론도 있다.
▶작년에 친구 아내를 성폭행한 사건 재판에서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자 피해자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자주 만나면서 남녀 관계로 발전했고 피해자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무죄 선고는 "성 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했다.
성 평등 사회로 옮아가면서 새로운 개념과 가치 기준이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고 있다.
SKT 성차별 광고, 뿌리박힌 남아선호 사상? (머니투데이 더리더 2018.09.04 소진영 기자) |
통신사 SKT가 성차별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성차별 논란을 야기한 SKT의 문구는 T플랜 요금제의 옥외 광고다. 해당 광고는 "아들, 어디 가서 데이터 굶지마" "딸아, 너는 데이터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하더라"라는 카피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끼리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광고 내용이지만 아들에겐 데이터 걱정을 하고 딸은 질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차별 논란이 가중되면서 이런 문구가 남아선호사상을 드러낸 문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책 '관계자 외 출입금지'의 저자인 엄지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성차별적인 티플랜 광고 문구 때문에 에스케이 탈퇴합니다'라는 글과 사진을 공유했다. 그는 "아들은 '밥 굶을까 걱정되는 안쓰러운 존재'로, 딸은 '부모 등골 빼먹는 이기적인 존재'로 프레이밍하고 있다"며 "에스케이라는 회사가 젠더 감수성이 매우 떨어지는 성차별적 기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객의 소리를 무시하고 후에 커다란 역풍을 맞을 지, 아니면 세심하게 반영해 광고 문구를 수정할 지는 귀사의 역량에 달렸다"는 글을 SKT 고객센터에 등록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SKT의 성차별 논란 광고에 대해 1만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유하며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SKT 관계자는 "가족간 데이터를 편리하게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상품의 특징을 대화 예시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한 것 같다"며 "딸 관련 부착물 문구만 철회하기로 결정하고 제거 조치 중에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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