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팀장칼럼] 자정 항해가는 은행원 종말의 시계

바람아님 2019. 2. 8. 08:44

조선비즈 2019.02.07. 04:01


"이러다 주4일제도 되지 않겠어요? 전 될 거라고 봅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올해 사업 목표에 ‘주4일제 추진’을 포함했다는 본지 보도를 언급하면서다.

규모가 작은 국내 회사들이 실험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한 사례는 간혹 있다. 그러나 은행처럼 고객과의 접점이 중요한 대형 금융사가 "일주일에 4일만 일하겠다"고 주장하니, 당사자인 은행원들마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30년 베테랑 은행원인 그는 노조가 결국 주4일제마저 얻어낼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앞으로 은행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금융노조의 올해 사업목표에는 ‘점심시간 1시간 보장’, ‘2주 장기 휴가 사용’, ‘PC 오프제 정착’ 등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이 여럿 담겼다. 은행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핵심성과지표(KPI)는 경쟁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결국 ‘일은 덜 하고 평가는 덜 받겠다’는 의미다.


금융노조는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거라고 주장한다.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은행도 추가 고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노조 사업 계획에는 임금에 대한 언급은 없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주4일제는)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다. 임금 문제까지 논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주4일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연봉 삭감을 하자고 하면 노조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삭감된 연봉을 보전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사업목표를 의결한 금융노조의 대의원 대회는 KB국민은행 노조 총파업이 진행된 지 딱 2주만에 열렸다. 지난달 8일 열린 국민은행의 총파업을 바라보는 여론은 차가웠다. 총파업에도 전국 1058개 지점이 모두 문을 열었고 창구 혼란도 없었다. 국민은행 노조의 총파업을 두고 국민들은 "국민은행 갔는데 파업한지도 몰랐다. 차라리 은행원을 없애자"고 분노하는데, 상급 단체인 금융노조는 2주 후에 주4일제를 꺼내 들었다. 금융노조의 눈높이가 대중들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구 종말 가능성을 알리는 ‘지구종말시계’는 지난해부터 ‘자정 2분 전’으로 설정돼 있다. 이 시계의 자정은 지구 종말을 뜻한다. ‘직업 종말시계’가 있다면 은행원도 자정 2분 전 쯤에 와있지 않을까. ‘미래에 은행원이 사라진다’는 예언이 어디 하루이틀인가. 은행들이 주택 시장 활황과 금리 인상 덕에 최대 실적을 올리니 종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에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미 지점은 사라지고 은행원도 줄고 있다. 은행원 종말의 시계가 빨라지는 것을 은행원만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송기영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