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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기부 獨 · 재산 압류당하는 日 .. 너무 다른 전범기업

바람아님 2019. 4. 8. 08:23

머니투데이 2019.04.06. 08:11

 

말 한 마디 '퇴출설 폭스바겐 CEO..'500년 전 사죄요구' 멕시코까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 김성주(90)할머니가 심경을 밝히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이날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총 5억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00년 5월 첫 소송이 시작된 지 18년 만의 결론이다. /사진제공=뉴스1


떠들석한 논란을 만든 경기도의회의 '일본 전범기업 스티커' 조례안 심의가 29일 보류됐다. 황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조례는 도내 초·중·고교 4700여곳 비품 중 일본 전범기업이 만든 제품에 인식표를 붙이자는 내용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문재인 정부가 반일 운동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이 발의안은 나오자마자 국내보다 일본의 더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전범기업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전지법이 지난 3월22일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에 제기한 압류명령 신청을 받아들이자, 일본 정부 내에선 "극히 심각"하다며 반발에 나섰다. 경제 보복 조치는 물론, 여당인 자민당 내에선 "한국과의 국교 단절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태다.


전범기업 관련 논란은 매번 불거질 때마다 '뜨거운 감자'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일본 전범기업 불매 리스트' 등은 아직도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해외에서도 전범기업 관련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며 화제다. 전범기업의 대처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모아봤다.

◇ '말 한마디에 퇴출설까지'…'나치 발언'에 곤혹 겪은 폭스바겐 CEO
허버트 디에스 폭스바겐 CEO. /AFPBBNews=뉴스1

독일 유명 자동차 브랜드인 폭스바겐도 최근 전범기업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12일 허버트 디에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행사에서 '나치를 연상시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그가 말한 'Ebit Macht Frei(이익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대문 앞에 새겨진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에서 본뜬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일으켰다. 디에스 CEO의 발언은 원 문구의 'Arbeit(노동)'을 'Ebit'(EBITDA, 법인세 등 차감 전 영업이익)으로 대체한 것이다. 허버트 디에스 최고경영자(CEO)는 이후 성명을 통해 "(나치 문구로 해석될) 그 가능성을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말 한 마디가 유난히 호된 비판을 받은 이유는 폭스바겐이 나치에 부역한 '전범기업'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1937년 히틀러가 나치무역 연합인 독일 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에 의해 세운 회사다. 당시 히틀러의 지시인 국민차 생산을 목표로 '딱정벌레차'로 유명한 비틀 국민차 만들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전용 차량 생산을 위해 수용소에서 1만5000명가량을 강제 동원한 전적도 있다. 1998년 폭스바겐은 수용소 생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패해 이들을 위한 1200만달러(약 136억원) 규모의 배상 기금을 설립했다.

그러나 해명 이후에도 '나치 발언'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폭스바겐 소액주주 사이에서 디에스 CEO의 '퇴출설'까지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소액주주 권익 단체인 DSW의 울리치 호커 대표는 "독일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며 다가오는 주주총회 때 폭스바겐 측에 사과를 한 차례 더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미국 장기 기관투자자는 "해명 가능한 불쾌함을 넘어섰다"고 말했으며, 다른 주주 역시 "(CEO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발언 이후 그의 판단력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언론의 뭇매 또한 거셌다. 블룸버그는 논평(3월21일)에서 "디에스 CEO에겐 관리자에게 필수적인 정치적, 인간적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며 "전기차로 사업을 전환하는 폭스바겐의 노력은 디에스의 놀랍도록 멍청하고 불쾌한 발언으로 인해 위험에 빠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블룸버그는 "악의적인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발언이 초래할 불쾌함을 알고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디에스 CEO의 퇴출설과 관련해선 "만장일치와는 거리가 먼 의견일 수 있다"며 "감독 이사회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고 전했다.
◇ "입 있어도 할 말 없다" … 128억 선뜻 기부한 독일 2대 부호

사진과 기사 내용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AFPBBNews=뉴스1

크리스피 크림 도넛, 캘빈클라인 향수 등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 라이만 가문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협력한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의 의미로 1000만유로(약 128억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에 따르면 라이만 가문의 투자회사인 JAB 홀딩의 페터 하르프 대표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며 "부끄럽다"고 밝혔다. 라이만 가문은 전체 자산이 330억유로(약 42조원)에 이르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가문이다.

라이만 가문이 반성을 표하게 된 계기는 나치 연루 관련 잠정적 조사결과가 지난달 5년 만에 나왔기 때문이다. 라이만 가문은 조상인 알베르트 라이만과 그의 아들 알베르트 라이만 주니어의 나치 지원 의혹이 일자 2014년 폴 에르케르 뮌헨대학 교수에게 객관적인 조사를 의뢰했다.

에르크르 교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43년 당시 라이만 가문이 고용 인원의 3분의 1에 이르는 175명을 강제로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제 동원 피해자는 러시아나 동유럽 출신 민간인, 프랑스 포로 등이었고 이들은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한 채로 구타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알베르트 라이만과 그의 아들이 나치당에 가입하거나 나치 친위대(SS)에 기부한 사실도 알려졌다. 1937년 알베르트 라이만 주니어는 나치 친위대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라이만 가문은 내년까지 최종 결과가 나오면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하르프 대표는 "알베르트 라이만과 그 아들은 유죄로 감옥에 가기도 했다"고 인정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칼럼을 통해 라이만 가문의 이러한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 NYT는 27일 논평을 통해 "기업의 가치는 역사에 대한 책임에 있다"며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사라지고 있는 만큼 기업이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는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멕시코 '500년 전 식민지배 사과하라' … 스페인은 단호히 거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왼쪽)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AFPBBNews=뉴스1

전범기업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사죄 요구도 있었다. 한일관계가 아니라 바다 건너 스페인과 멕시코 이야기다.

영국 BBC에 따르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500년 전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은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의 군대가 현재의 베라크루즈 지역에 상륙하며 시작됐다. 2년 만에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은 이후 300년간 멕시코를 지배했다. 학살과 전투, 스페인 주민들이 갖고 온 질병 등으로 인해 수백명 이상의 멕시코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이달 초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영상에서 "스페인 국왕과 교황에게 멕시코인들의 인권을 침해한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서한을 보냈다"며 "그들은 학살을 했고, 검과 십자가로 이른바 '정복'을 하면서 우리의 사원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화해의 시간이 왔지만, 그전에 그들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선출된 오르바도르 대통령은 멕시코의 70년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다.

스페인은 사과 요구를 즉시 거부했다. 스페인 정부는 성명을 통해 "500년 전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 영토에 다다른 것은 현시대적 관점에서 판단할 수 없다"며 "우리 두 형제 나라는 분노 없이 건설적인 관점에서 공유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즉각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볼리비아를 방문해 가톨릭 교회가 식민지 시대에 원주민을 억압했다며 이를 사과한 적이 있다.

강민수 기자 fullwater7@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