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부모 신고하라"는 인권교육

바람아님 2019. 4. 30. 06:52

(조선일보 2019.04.29 한현우 논설위원)


가부장제가 확고한 인도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하고 남자아이들은 아무 일도 돕지 않는다.

딸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물 길어오고 불을 지피며 밥을 한다. 집안일 하느라 학교 숙제 할 시간조차 없다고 한다.

유엔이 이와 관련해 인도 사회에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성이 전담하는 가사를 '대가 없는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로 인한 교육 기회 박탈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도 아이들에게 "부모를 신고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에 "부모가 설거지를 딸에게만 시키거나 자녀 이메일을 열어보면 인권위원회에

신고하라"고 돼 있다고 한다. 한 학부모 단체가 "부모의 가정교육을 인권침해로 규정했다"며 법원에 교과서 사용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어처구니없는 뉴스에 "엄마만 밥을 해도 인권침해, 아빠만 돈 벌어와도 인권침해" "우리 시어머니도 신고해야겠다"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서양 부모들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시킨다.

호주의 한 가정교육 단체는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장난감과 책 정리부터 시키라고 조언한다.

네 살이 넘으면 세탁물을 널거나 개는 일을 돕게 하고, 여섯 살부터는 자신의 밥그릇과 식기를 개수대에 갖다 놓거나

화분에 물 주는 일을 시키라고 권한다. 물론 아들과 딸 모두 가르치고 부모 역시 가사를 공평하게 나눠서 한다.

교과서를 집필한 교사들이 이런 교육을 의도했다고 믿기엔 "부모를 신고하라"는 가르침이 너무 섬뜩하다.


▶설거지 시킨 부모를 자녀가 인권위에 신고하면 그 집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와 자녀가 모두 평등하고 화목한 가정이 될까.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회초리 교육'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회초리가 사라진 것은 부모들의 생각과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이지 자녀가 신고할까봐 무서워서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제부턴가 '인권'이란 딱지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 풍조가 번지고 있다.

'성관계나 임신, 출산'에 대한 학생 지도도 문제시하는 '학생 인권 조례'가 나오더니 이젠 인권 들먹이며 부모 자식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라 세운다. 자녀 이메일 열어본 부모를 신고해야 한다면 공무원들 휴대폰 빼앗아 뒤져보는

청와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적어도 설거지 인권을 가르친 교사들은 그 답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