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1.20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간신을 동물에 비유하면 꾀로는 여우[狐]이고 비루함으로는 쥐[鼠]다.
중국 고사에 성호사서(城狐社鼠)라는 말이 있다. 성벽에 숨어 사는 여우와 사직단에 파고들어간
쥐새끼란 뜻인데 최고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서 백성들에게
온갖 패악질을 해대는 간신을 칭하는 말이다.
서진(西晉)이 망하고 사마씨(司馬氏)인 원제(元帝)가 동진(東晉)을 세웠다.
이때 서진을 세운 무제(武帝)의 사위이기도 한 산동 지방의 명문가 출신 왕돈(王敦)이 원제를 세우는 데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올랐다. 왕돈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내심 걱정하던 원제는 유외(劉隈)와 대연(戴淵)을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삼아 왕돈을 견제케 했다. 반격에 나서고자 결심한 왕돈은 측근 참모 사곤(謝鯤)을 불렀다.
"유외는 간신이다. 이 자를 제거해 나라에 보답해야겠다."
사곤이 말했다. "유외가 재앙을 불러온 자이긴 합니다만 성벽에 숨어 사는 여우와 사직단에 파고들어간 쥐새끼와 같습니다."
자칫 여우와 쥐를 잡으려다가 성벽이 허물어지고 사직단이 훼손될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마침내 왕돈은 군대를 동원해 수도인 건강(建康) 근처까지 진격했고 원제는 왕돈이 지목한 간신들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하고서 겨우 왕돈과 화해할 수 있었다. 왕돈은 보기에 따라 윤석렬 검찰총장의 행보를 떠올릴 수 있겠다.
사서(社鼠)라는 말은 이미 춘추시대 제(齊)나라 명재상 안영(晏嬰)이 쓴 책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실린
임금 경공(景公)과의 대화에도 나온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엇이 근심인가?" "저 사직단의 쥐가 걱정입니다."
"나라에도 사직단의 쥐와 같은 자들이 있으니 임금 가까이에 있으면서 안으로는 임금으로 하여금 선과 악을
헷갈리게 하고 밖으로는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는 어지러워지건만
정작 제거하려 해도 임금이 보살펴주고 있어 마치 임금의 뱃 속에 들어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들이 바로 나라에 있는 사직단의 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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