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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생로병사] '쩍벌남'에 대한 의학적 해석

바람아님 2019. 12. 25. 09:13

조선일보 2019.12.24. 03:15

 

남성은 허벅지 바깥쪽 근육 발달.. '해부학적 자세' 여성보다 바깥쪽
양반다리 등 관습적 요소에 남성들의 껄렁한 행태도 밀접한 영향
나이 들면 근육 줄어 '시니어 쩍벌' 심해져.. 평소 오므리는 훈련 해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지하철 의자처럼 여럿이 나눠 앉는 공간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는 남자를 흔히 쩍벌남이라고 한다. '쩍벌녀'란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는 남성의 문제다. 영어로도 맨-스프레딩(man-spreading)이라 한다. 주변 공간까지 퍼져 앉은 남자 정도로 해석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오른 단어로, 쩍벌남은 어느 나라에나 있기에 세계적 민폐로 여겨진다. 스페인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쩍벌'을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타인 공간 침해 행위로 규정해 벌금을 물리는 도시도 있다.


남자들은 신체 구조상 쩍벌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억울해한다. 의학적으로 따지면, 그럴 만한 부분이 있다. 사람의 골반을 보면 넓적다리뼈가 골반 바깥에 붙어 있다. 넓적다리뼈 상단은 골반에서 바깥 방향으로 연결돼 있다. 그렇기에 앉거나 서 있을 때 허벅지를 살짝 벌려야 편하다. 이건 남녀가 같다.

남성은 허벅지 바깥쪽 근육이 발달해 있다. 허벅지를 안으로 모이게 하는 내회전 근육보다 밖으로 차내는 외회전 근육이 세다. 사냥이나 뜀박질처럼 원시적 남성 일이라는 게 대부분 다리를 박차고 밖으로 지르는 행위다. 외회전 근육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팔도 그렇다. 손을 밖으로 돌려 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의학 용어 중에 '해부학적 자세'라는 말이 있다. 몸에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았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세를 말한다. 그때 다리와 팔이 바깥으로 살짝 돌아가 있다. 그게 남성에게서 더 뚜렷하다.


쩍벌남은 사회 관습 요소와 연결된다.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다소곳한 자세를 하도록 지적받아 왔다. 다리를 모은 채 무릎을 꿇은 모양새를 자주 했고 잘 취한다. 무릎관절을 내리누르는 이런 자세는 퇴행성 무릎 관절염이 여성에게 훨씬 많은 이유다. 이런 배경 때문에 여성 중에는 허벅지가 안으로 모이는 이른바 안짱다리가 많다. 대표적 사례가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들의 종종걸음이다.


반면 남성은 어린 나이에도 양반다리로 앉는다. 허벅지가 바깥으로 벌어지는 형태다. 이게 환자 수준으로 굳으면 오므리기 어렵다. 엉덩이 관절 질환과 관절염이 남성에게 더 많은 원인이다. 폴란드는 다리를 벌리고 앉는 관습 때문인지 엉덩이 관절 탈구가 흔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판 쩍벌남 뉴스가 종종 해외 미디어에 나오는데,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쩍벌남은 다소 껄렁한 행동 양태와도 관련 있다. 지나친 쩍벌 자세를 자세히 보라. 대개 엉덩이가 엉거주춤 앞으로 살짝 나와 있으면서 걸터앉은 자세다. 이렇게 되면 골반과 넓적다리 관절이 더 바깥을 향하게 된다. 걸터앉은 자세에서는 다리를 안으로 모으는 내회전 근육을 쓰기 어렵다. 더 쩍 벌어지게 된다. 골반을 등받이 깊숙이 붙이고 허리를 곧추세운 반듯한 자세에서는 '쩍 벌리기' 쉽지 않다.


일부에서는 쩍벌 자세가 열에 약한 고환의 기능을 보존하려는 본능적 행동이라고 한다. 고환 냉각 및 환기 건강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환은 이미 36.5도 체온에서 벗어나 외부로 나와 있고, 열 발산에 효율적인 라디에이터 형태의 외부 미장재를 갖고 있기에 고환이 쩍벌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허벅지의 내회전 근육을 일부러 쓰는 일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줄면서 내회전근 위축이 심해진다. 고령일수록 다리를 모으고 앉기가 어렵다. 이는 보행 자세 변형으로 이어진다. 점점 발바닥 보행축이 바깥으로 돌아가 팔자걸음이 된다. 보폭이 좁아지고, 걷는 속도가 준다. 뭔가에 걸려 넘어지는 낙상의 위험도 커진다. 고령자에게 쩍벌 각도는 근력 감소 지표다.


쩍벌남 관련 남성 해부학이 그렇다고 공용 사회학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지하철에 쩍벌남 환자석을 따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자세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의학적 해석이 따른다. 쩍벌은 남의 공간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사회적 매너의 문제다. 공공장소에서는 깊숙이 진중하게 앉으시라. 그러면 쩍벌은 준다. 시니어 쩍벌은 노쇠 징조로 받아들여야 한다. 틈나는 대로 다리에 힘을 주어 오므리는 허벅지 내회전 근육 강화 훈련을 해야 한다. 뭐든지 오므려야 안전하고 건강한 법이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