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17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존 러스킨 '명예의 뿌리'
의사인 내 친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 현장에서 자원봉사한 후기의 일부이다.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N95 마스크와 고글은 두 시간을 넘기면 엄청난 강도의 콧잔등 압통을 시작으로
두통과 구토감 등 흡사 고산병과 같은 증상을 가져왔으나 조금이라도 밀착이 덜 되면 김 서림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우므로 느슨하게 풀 수도 풀 방법도 없으니 그저 고스란히 참아내야 했다.
보호 장비가 넉넉지 못해서 잠깐 쉬고 온다는 말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세 시간에 한 번은 교대해야 한다는 음압 병동 규칙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그 힘든 보호구를 입은
행정 요원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텐데도 묵묵히 자기 자리서 자기 일을 감당해 주었다.
깊게 밀착된 마스크로 안면 근육이 마비된다는 느낌이 들 때쯤 일과가 끝났다.
폐기물 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베테랑 요원들과 어둠이 깔린 운동장을 걸어 나올 때 며칠이나 버틸까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다녔던 해외 의료 봉사나 참혹한 난민촌 진료 시에도 없었던 체력 저하였다.
검사 가능 조건에 대한 지침이 오늘은 조금 엄격해져서 그냥 돌려보낸 분들이 꽤 있었지만 마구 해달라고 우기거나
항의하는 분이 아무도 안 계셨다. 근심하는 얼굴로 아쉬운 듯 창문을 닫고 가는 분들께 의사로서 이 재난이 내 탓인 양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런데, 검사 못 하고 가면서도 수고하시라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거의 다였다.'
우리 의료진은 숨 막히는 방호복과 허술한 도시락, 장시간 중노동에 더해 보호 장비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어느 때보다 청결 무구한 방호 장비를 착용해야 할 의료진의 방호복도 달리고, 마스크는 거듭 재사용하기도 한다니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진의 보호 장구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그분들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 하는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토요일자 조선일보에는 마스크를 사용 횟수가 표시된 못에 걸어두며
여섯 번까지 쓰고, 의료용 덧신 대신 비닐봉지와 헤어캡을 씌운 의사의 발 사진이 실렸다.
그런데도 박능후 장관 말대로 '우리나라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이) 모범 사례이자 세계적 표준'이 된다면
정부가 그 공을 독점하려 하겠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은 말했다.
우리가 군인과 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군인의 과업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고
의사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지에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존경받을 사유가 하나라도 있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7/2020031700012.html
(존 러스킨의) 생명의 경제학 :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 ||
저자가 속한 분야![]() 영국이 낳은 19세기의 위대한 사회사상가, 예술 비평가이다.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화려한 예술비평가의 길과 험난한 사회사상가의 길을 차례로 걸었던 그의 관심은 예술을 비롯하여 문학, 자연과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펼쳤다. 당대 예술평단의 일인자로 명성을 떨치던 중, 어두운 사회경제적 모순을 목도하고 불혹의 나이에 사회사상가 활동으로 전향, 정통파 경제학을 공격하고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예술의 경제학》을 비롯한 경제학 저술과 《근대 화가론》 《베네치아의 돌》 등의 예술비평서와 《참깨와 백합》 《티끌의 윤리학》 등의 대중강연집이 있다
출판사 서평[콘 힐 매거진]에 연재할 당시 대부분의 독자들로부터 거친 비판을 받았다고 존 러스킨이 스스로 서문에 쓸 만큼 인간적이고, 죽음에 맞서 생명을 살리는, 악마에 대항하는 천국의 경제학이다. “진짜 경제학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그리고 파멸로 이끄는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생명’의 가치가 유일한 척도인 그의 경제론은 정직, 도덕, 정의 등 인간의 정신적 가치들을 더 중요시하였다. 그를 통해 노동, 자본, 고용, 수요와 공급 등의 경제용어들은 새로운 시각에서 윤리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상을 심어주었다. 즉, 일반적인 경제학 책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도덕’이나 ‘정직’, ‘애정’, ‘신뢰’, ‘영혼’과 같은 단어들이 그의 중심 사상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굶주린 어머니와 아들이 한 조각의 빵을 놓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는 않는 것처럼 다른 인간관계도 무조건 적개심을 품고 경쟁하는 것으로 가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천국의 포도원에는 처음과 나중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영속성을 이야기하지만 존 러스킨에게는 당대에 외롭게 투쟁하고 후대에 빛을 비출만한 반-경제학의 모토가 된 성경 구절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법칙을 깨뜨리는 이 이상한 불평등은 ‘마지막에 온 이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디는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러스킨의 가르침에 따라 내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책 한 권을 들라면 바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들겠다.’고 그의 수필집에 썼다. 추천사 생명은 사랑과 환희와 경외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다. 가장 부유한 국가는 최대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내는 국가이고, 가장 부유한 이는 그의 안에 내재된 생명의 힘을 다하여 그가 소유한 내적, 외적 재산을 골고루 활용해서 이웃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별나라에서 온 경제학이라 생각될지 모르나, 사실 이 경제학이야말로 지금까지 존재해온 유일한 경제학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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