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19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美 워싱턴대 게임과학센터, 지난달 코로나 퇴치 게임 올려
세포에 달라붙는 바이러스 차단 단백질 설계… 누구나 참여
과학자들 10년간 못 풀던 과제, 6만명이 10일 만에 해결도
뇌과학, 유전학 게임도 성과… 일반인과 과학자의 연대 전선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모두가 잠든 새벽 대학가 원룸에서, 도심의 PC방에서 '우한 코로나' 퇴치에 힘을 합치겠다는
전사(戰士)들이 하나둘씩 게임에 접속한다.
대학 때 생물학을 공부한 회사원, 막 야근을 끝내고 귀가한 제약사 직원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어느 온라인 게임의 TV 광고 장면이 아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겠다며 일반인들이 치료제 개발에 동참한 것이다. 방법은 게임을 통해서다.
미국 워싱턴대 게임과학센터는 지난달 말 '폴드잇(Foldit)' 웹사이트에 일반인 대상 코로나 바이러스 게임을 발표했다.
게임의 목표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돌기를 차단하는 단백질을 설계하는 것이다.
바이러스 돌기는 마치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맞듯 인간의 호흡기 세포 표면에 달라붙는다.
치료제 단백질은 그 사이에 먼저 들어가 결과적으로 감염을 막는 원리다.
단백질은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구조를 가진다. 그렇다고 아미노산들이 실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아미노산 사슬들은 이리저리 접히면서(fold) 입체 형태를 만드는데, 이런 형태에 따라 단백질의 기능이 달라진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게이머들에게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 구조를 제시하고 여기에 들어맞는
치료제 단백질을 만들게 했다.
과학적 원리에 맞는 구조를 만들면 더 높은 점수를 얻고 순위가 높아질 뿐 다른 보상은 없다.
언뜻 생각하기에 컴퓨터가 단백질 설계를 더 빨리 할 것 같지만 모든 구조를 무작위로 시험하는 바람에 효율이
생각보다 낮다. 반면 사람은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가능성이 큰 구조부터 시험하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구조도 만들기 때문에 전문 연구진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폴드잇은 2008년 에이즈 치료용 단백질 구조를 풀기 위해 처음 개발됐는데, 2011년에는 10년간 과학자들이 풀지 못하던
에이즈 관련 단백질 구조를 일반인 게이머 6만여 명이 게임을 통해 단 10일 만에 해결했다.
/일러스트=이철원
물론 게임은 쉽지 않다. 아미노산 사슬을 이루는 다양한 원소와 이들 사이에 가능한 화학적 결합 형태를 이해해야
가능하다. 그렇다고 배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20여만 명이 폴드잇에
접속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을 방법을 찾고 있다.
우한 코로나가 팬데믹(대유행병)으로 발전하면서 전 세계 연구기관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총동원돼 백신과 치료제를
찾고 있다. 워싱턴대 연구진도 그중 하나다. 다른 연구진과 달리 일반인 게이머들을 든든한 지원군으로 확보한 점이
다를 뿐이다. 개발 속도는 제약사나 대형 정부 연구기관들이 훨씬 빠르다.
그렇다면 이제는 게이머의 머리를 빌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폴드잇 과학자들은 백신과 치료제가 시장에 나올 때까지
일반인용 게임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제약사가 게이머들보다 먼저 새로운 치료제를 찾아도 동물실험과 임상 시험을
거쳐 환자들에게 적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대안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곳에서 백신·치료제가 상용화돼도 여전히 폴드잇 게임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우한 코로나가 특정 지역과 인구 집단에서 계속 발병하는 풍토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다음에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로 단백질 구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게임을 통해 축적된 치료용
단백질 설계 정보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응해 신속하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반인이 참여하는 과학 연구 게임은 폴드잇 외에도 많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한국인 과학자 서배스천 승(한국명 승현준) 교수는 생쥐 망막의 신경세포들이 연결된 형태를 찾는
게임인 '아이와이어(EyeWire)'를 개발했다. 승 교수는 지난 2018년 한국뇌연구원 김진섭 박사와 함께 일반인들이
게임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눈과 뇌를 연결하는 시각통로 47가지를 새로 찾았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진은 테트리스 게임처럼 블록 형태로 제시되는 유전자 염기서열 해독 자료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파일로(Phylo)'란 게임을 개발했다. 게이머 2만여 명이 2년 만에 35만 건의 유전자 해독 오류를 찾아냈다.
인류는 전염병과 벌이는 전쟁에서 과학자·일반인 할 것 없이 거대한 연대 전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출구가 잘 보이지 않아도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대사처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9/2020031900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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