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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1] 뉴욕 먹자골목

바람아님 2020. 5. 14. 20:48

(조선일보 2020.05.13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레스토랑이 수두룩한 뉴욕에도 먹자골목이 있다. 타임스스퀘어 근처 46가(街)이다〈사진〉.

1906년 '바베타'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처음 문을 열었고 다른 식당들이 하나둘씩 더해졌다.

1973년에는 뉴욕시 공식 '먹자골목 (Restaurant Row)'으로 공표되었다. 당시 존 린지 뉴욕시장은

"파리를 제외하고 한 거리에서 16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했다.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1] 뉴욕 먹자골목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타이, 스페인, 일본, 브라질 등의 음식을 대표하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전통 스테이크 하우스, 유기농 햄버거, 타파, 피자, 수제 맥주 전문점들, 간판이 없는 스피크이지(speakeasy),

게이 바, 재즈 바, 전통 카바레가 한길에 모여 있다. 브라질 식당과 프랑스 식당, 이탈리아 식당은 월드컵 때면

입구에 대형 국기를 걸어 놓고 재미있는 신경전을 벌인다.

한때 서울의 유명 나이트클럽 이름이었던 원조 '돈텔마마(Don't tell mama)'도 이 길에 있다.

브로드웨이 쇼를 감상하는 하루 7만명의 관객, 배우와 극장 직원들이 공연 전후로 식사하는 거리다.


이 골목의 매력은 지역사회 문화다.

레스토랑 주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거리의 안전과 위생, 홍보 안건을 의논한다.

같은 길에 있는 교회에서 모이는데 목사님이 주재한다.

수십 년째 대를 이어 온 터줏대감들도 많아 가족끼리도 서로 잘 알고 친하게 지낸다.

이 길에 처음 레스토랑을 열면 주변 레스토랑 주인들이 앞을 다투어 방문한다.

일부러 비싼 음식과 비싼 와인을 팔아 주고 간다. 환영 인사이자 자리 잡기 힘든 레스토랑 사업의 고단함을

나누는 마음이다. 영업 중 얼음 기계가 고장 나거나 식재료가 떨어져도 문제없다.

옆집으로 달려가면 언제든지 웃으며 도와준다. 이런 분위기에서 얌체 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호 간의 존경과 동료애만 있다. 뉴욕의 레스토랑들이 모두 문을 닫은 지 두 달, 주인들은 가끔 나와서

청소와 수리를 한다. 먹자골목의 모임을 주최하는 교회는 노숙자를 위한 무료 배식을 계속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3/20200513043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