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023. 8. 5. 08:56 수정 2023. 8. 5. 09:27
'인상주의 개척자' 클로드 모네
버팀목 돼 준 두 사람이 없었다면
위대한 명작들도 없었다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니 아들놈이 내 딸에게 병을 옮겼다. 네 아들이 내 딸을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분노와 절망을 애써 억누르며, 형은 동생에게 한마디 한마디 꼭꼭 씹어 뱉듯 말했습니다. 공장을 운영하는 형은 늘 동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이 돼줬습니다. 동생의 아들을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켜 준 것도 그런 도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아들은 어디선가 의문의 병을 얻어왔고, 공장 직원들에게 그 병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귀한 딸까지 병에 옮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의 아들이 일부러 병을 옮긴 건 아니었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동생의 이름은 인상주의의 개척자로 불리는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 형의 이름은 레옹(1836~1917). 둘도 없는 사이였던 형제는 이렇게 영원히 인연을 끊게 됐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세상의 인정을 받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모네는 꺾이지 않고 자신의 직감을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훗날 모네는 회고했습니다. “나는 위대한 화가가 아니다. 단지 내가 느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 과정에서 원래 있던 그림 그리는 규칙들을 자주 잊어버렸을 뿐이다.”
카미유가 병에 걸려 1879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행복도 끝나게 됩니다. 모네는 절망했습니다. 아내를 잃고 얼마 안 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극도의 슬픔에 빠져 있네. 어떤 길로 나가야 할지, 두 아이를 데리고 내 삶을 어떻게 꾸릴 수 있을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비통함이 뼈에 사무치네.”
모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련 연작은 그 결과물입니다. 이 작품은 추상미술의 시대를 열어젖히며 미술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물에 둥둥 떠 있는 똑같은 수련을 반복해서 그린 희미한 그림일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색채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이와 감동이 느껴집니다.
https://v.daum.net/v/20230805085603749
"네 아들 때문에 내 딸이 죽었다"…둘도 없던 형제의 비극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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