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1.02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새 달력을 펼친다. 이젠 음력보다 양력이 훨씬 친근한 시대가 되었다. 7개 요일로 되어 있는 주일, 30일과 31일로 교대되는 달, 2월만 예외적으로 28일이되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윤달 등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달력이 그레고리력이다. 로마 시대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만들어져 장기간 유지되어 오던 율리우스력을 개선하여 만든 달력이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칙령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새 달력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1582년 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 날이 10월 15일 금요일이 되어 10일이 사라졌다.
그레고리력이 항상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혁명 정부는 구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해 혁명력이라는 것을 반포했다. 혁명력은 10진법에 기초한 합리적인 달력이었다. 열두 달의 각 달은 모두 똑같이 30일이며, 각 달은 10일을 주기로 하는 세 단위로 나눈 다음 마지막 10일째인 데카드를 쉬는 날로 정했다. 이렇게 열두 달 360일 외에 남은 5일은 에파고메네라 하여 축일로 정했다.
각 달에는 싹의 달(제르미날), 꽃의 달(플로레알), 초원의 달(프레리알) 하는 식으로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과거에는 각각의 날이 가톨릭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었지만 이제는 '튤립의 날' '쟁기의 날' 하는 식으로 개명되었다. 12월 25일은 '개의 날'이었는데, 이는 기존 종교적 의미를 없애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 해의 시점은 1월 1일이 아니라 혁명봉기일(과거 그레고리력으로 9월 22일)로 삼았다. 심지어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던 방식도 바꾸었다. 이제는 하루가 10시간이고 한 시간은 100분, 1분은 100초가 되었다.
달력을 그렇게 바꾸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7일에 한 번 돌아오는 일요일 대신 10일에 한 번 돌아오는 데카드에 쉬는 것은 일반인들의 생활 리듬에 맞지 않았다. 계절 축제들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은 후 우선 일요일을 부활시키더니 1805년 공식적으로 혁명력을 폐지하고 1806년 1월 1일에 그레고리력으로 되돌아갔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방식이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단기 4346년이자 이슬람력 1434년 그리고 서기 2013년, 올 한 해 독자 제위 만사형통(萬事亨通)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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