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모두 눈을 맞고 다녔다. 아이도 어른도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하늘이 뿌려주는 선물인 듯 기꺼이 맞으며 길을 걸었다. 사진가 박신흥이 기록한 1970년대의 한 장면이다.
모두가 넉넉하지 않았던 그때, 사람들의 가슴속엔 겨울을 녹일 만큼 뜨끈한 것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그것은 차가운 현실을 견뎌내고 훨씬 더 나은 삶을 열어갈 거라는 열망이었다. 그래서 머리와 어깨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도 불편하지 않았다.
이제 아무도 눈을 맞지 않는다. 눈이 오면 모두가 우산을 쓰는 이 시대, 이 사진 한 장은 오랜 세월 동안 닫혔던 기억의 문을 살며시 열어준다. 그리고 눈을 맞고 다닐 때의 그 맑고 서늘했던 기분을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신경훈 편집위원
'文學,藝術 > 사진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이 있는 아침] 흔들려도 쓰러지지 마라 (0) | 2014.06.15 |
---|---|
[사진이 있는 아침] 겨울산에게 삶의 길을 묻다 (0) | 2014.06.14 |
[Photo&Fashion]팀 워커, 패션과 예술의 경계선에 질문을 던지다 (0) | 2014.06.12 |
사진작가 김귀욱의 포토 에세이 : ⑧ 플라멩코 (0) | 2014.06.11 |
인문의 향연- 24시간이 모자란 사람들을 위한 변명 (0) | 2014.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