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서평] 뉴스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법

바람아님 2014. 8. 2. 10:05

(출처-조선일보 2014.08.02  박돈규 기자)

알랭 드 보통이 쓴 '뉴스 사용설명서'
대중은 뉴스를 소비하며 안도감 얻는다
끔찍할수록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국제 뉴스
재난 뉴스는 성숙한 성찰에 이르지 못해…
실패 전하기보다 자부심·희망도 일러줘야


	뉴스의 시대 책 사진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지음|최민우 옮김
문학동네| 304쪽|1만5000원



뉴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장소는 지구상에 몇 남아 있지 않다. 
손학규 정계 은퇴, 여수 조선소 가스 유출, 세계가 떨고 있는 '에볼라' 공포, 최경환발(發) 증시·부동산 
훈풍, 영화 '명량' 100만 관객 돌파…. 1일 배달된 신문은 이런 헤드라인으로 신경을 낚아챘다. 
출근길 버스나 대륙을 오가는 비행기에서도 뉴스는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 행성 곳곳에서 일어난 인류의 성취, 재난, 범죄, 복잡한 연애사를 확인하느라 
우리는 종종 일상을 멈춘다.

인간은 뉴스 소비자인가 중독자인가.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우리의 현실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뉴스, 
그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질투와 공포, 흥분과 좌절 등 뉴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을 다루는 '뉴스 사용설명서'를 상상했다. 
이 책이 그 결과다.

◇대중은 왜 계속 뉴스를 확인하나
공포와 관련이 있다. 뉴스에서 눈을 떼고 아주 짧은 시간이 흘러도 습관처럼 불안이 축적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이 쉽게 잘못되는지, 또 순식간에 벌어지는지 안다.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는 뿌리 깊은 근심은 스마트폰을 눌러 기사 제목이 뜨기를 기다릴 때 
희미하게 잡히는 두려움의 맥박을 설명해준다. 
"그 맥박은 먼 조상이 동이 트기 직전의 싸늘한 순간, 태양이 변함없이 창공에 떠오를지 궁금해하며 느꼈을 불안이 
모습을 바꿔 나타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를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를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Corbis

뉴스는 우리에게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를 찾아낸다. 

그것이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게 용인함으로써 각자 사로잡힌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기근, 침수된 마을, 잡히지 않는 연쇄살인범, 내각 사퇴, 내년 최저생계비에 대한 예측 같은 외부의 혼란이야말로 우리를 내면의

평온으로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잔혹한 사건이 담긴 뉴스를 접하면 동료를 독살하거나 친척을 안뜰에 묻어버린 적이 없는 내 자제심 앞에서 새삼 안도한다"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썼다.


뉴스가 어째서 중요하냐고 묻는 건 뉴스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보다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할 때 얻게 될 보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출처에서 추려낸 뉴스 조각들로 짜여 있다. 

시(詩)나 철학의 구절만큼이나 뉴스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가정 아래서 정교하게 분석된다.

◇따분한 정치 뉴스, 균형감 없는 국제 뉴스
현대 언론이 제공하는 진지한 정치 기사들은 흔히 지루함과 당혹감을 유발한다고 이 책은 썼다. 

인류 역사상 사람들을 따분하게 하는 뉴스란 거의 없었다. 

존재하는 정보는 귀족 통치 계급이 쥐고 있었다. 극소수에만 전달되던 뉴스가 이젠 모두를 위한 것이 됐지만, 

우리의 호기심이라는 바퀴는 정보가 그득한 진창 속에서 헛돌 위험과 자주 맞닥뜨린다. 

정치 뉴스가 따분하고 정신 사나우면 대중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사회는 자기 딜레마를 붙들고 고심하는 일에 무능해진다. 

진지한 뉴스를 소비하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국제 뉴스를 지적하는 대목은 통렬하다. 끔찍하고 피투성이인 사건일수록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런 철학이 지닌 문제는 만약 우리가 특정 지역에서 일상이 뭔지 감을 잡지 못한다면 비일상성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곳 거주민의 일상생활과 소박한 희망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거기서 벌어진 비극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 학교에 간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소말리아에서 괜찮은 결혼식이 가능한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직장생활이 

어떤지에 대해 우리는 깜깜하다. 셀러브리티 뉴스의 경우에도 유명인사가 성공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다루지 않고 결과에만 

몰입해 공허한 질투심을 부른다고 이 책은 진단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배워라
그리스 비극 작가들은 우리가 얼마나 사악하고 어리석으며 육욕에 불타고 맹목적인지 일러줬다. 

인간이 고귀하지만 추악한 결점을 지닌 종(種)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타일렀다. 

'오이디푸스 왕'을 보면서 주인공을 패배자나 정신병자로 치부하는 관객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재난 뉴스의 서술 방식은 이보다 덜 신중하다. 성찰이나 성숙한 슬픔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실패를 그냥 보아넘겨서는 안 된다. 뉴스는 문학이나 역사학처럼 '인생의 시뮬레이터'로 작동할 수 있다."

뉴스는 무한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날마다 뽑아낸 정보 한 줌에 불과하다. 

이 책은 정치·국제·경제·셀러브리티·재난 뉴스를 점검했다. 

부제가 '뉴스 사용설명서'지만 뉴스의 속성과 문제점, 방향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국제 뉴스에서는 보도의 중립성에 대한 집착을 치우라"는 훈수를 비롯해 전부 동의할 순 없지만,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나 소비하는 사람이 곱씹어볼 만한 대목에 눈길이 붙잡힌다.

드 보통(Alain de Botton)"사회가 저지른 최악의 실패를 날마다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부심과 회복력, 희망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일러주는 게 뉴스의 임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의 쇠락은 감상적인 낙관주의에 의해서만 촉발되는 게 아니다. 

미디어가 유도한 우울증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