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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부끄럽지 않은가?… 당신의 민낯

바람아님 2014. 7. 12. 10:53

(출처-조선일보 2014.07.12 김윤덕 기자)

[서평]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로버트 노직 지음|김한영 옮김|김영사|436쪽|1만8000원

성찰하는 삶을 자화상에 비유
죽음·사랑·性… 26가지 논제에 대한 자유주의 철학자 노직의 인생학 강의
"신의 존재보다 중요한 것은 日常… 당신도 예수처럼 불멸의 삶 가능"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이 물음이 가슴을 파고든 건, '국민 트라우마'가 된 세월호 참사 때문일 것이다. 
'국가 개조'라는 어마어마한 단어는 차치하고라도, 나 자신의 인생관을 바닥부터 되짚어보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는 지금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어떤 자동조종 장치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삶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2002)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10여 년 전에 쓴 이 책의 화두(話頭)가 바로 소크라테스의 '성찰'이다.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가혹하지만 
"깊이 있는 사고를 앞세워 삶을 이끌 때 우리는 남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노직이 전하려는 메시지다. 원제가 '성찰하는 삶(The examined life)'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천재 철학자'로 불리며 30세에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가 된 노직(Robert Nozick)은 그 명성답게 유려하고도 날카로운 글 솜씨로 '인생학 강의'를 시작한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던졌다는 마지막 질문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후세 철학자의 답변이다. 
"성찰된 삶을 사는 것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성찰 혹은 삶에 대한 철학적 명상은 눈만 감고 있다고 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왜 행복만 중요한 것이 아닌가?' 
'여러 세대에 걸쳐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정당한가?' 
'신은 왜 악의 존재를 허락했을까?'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되물으며 하나하나 조각 퍼즐을 맞춰가야만 렘브란트의 빛나는 자화상처럼 '걸작 인생'을 완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첫 장의 주제는 '죽음'이다. 
신의 영역, 사후 세계를 믿을 것 같지 않은 자유주의 철학자가 내세적이고 동양적인 세계관으로 죽음을 인식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죽음이란 개인의 삶 너머에 있는 종점이 아니다"고 말하는 노직(Robert Nozick)은, 
"죽음은 힌두교나 불교가 말하는 명상의 상태를 포함해 삼매(三昧), 열반(涅槃), 득도(得道)와 꽤 비슷한 성격을 띨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용감하고 고귀한 삶을 
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 링컨, 잔 다르크, 카이사르의 죽음이 그걸로 끝이 아니라 후대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그래서 '불멸의 삶'이라 불리는 것처럼.

◇日常을 신성시하라


'부모와 자식'을 주제로 한 챕터에서는 상속, 세습이 과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부모에게 부모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부모에게 자신의 부모 역할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못박는 노직(Robert Nozick)은, 
재산을 물려주는 행위가 부모·자식 간 유대를 강화시킬지는 몰라도 부(富)와 지위의 지속적인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걱정한다. 
"상속받은 만큼의 액수를 세금으로 내고 물려주도록 상속제도를 고치는 것이 해법"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렘브란트가 34세 때 그린 자화상.
“성찰된 삶을 사는 것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로버트 노직은,
“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가 자기 자신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극찬한다. 그림은 렘브란트가 34세 때 그린 자화상. /토픽이미지
사유재산권을 신성시하고, 세금은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강제 노동이라고까지 주장했던 노직이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을 정면 비판해 '세기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그가 인생 후반부에 접어드니 생각이 바뀐 걸까. 
상속에 관한 노직(Robert Nozick) 자신의 바람이 뭉클하다. 
"나는 생각하고,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여행하고 탐구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썼다. 
그렇게 내가 쌓아 모은 것, 즉 얼마간의 지식과 이해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신의 존재 그 자체보다 '일상을 신성시하라'는 통찰도 돋보인다. 
대충 먹는 게 아니라, 입 안에서 음식을 씹고 누르고 빨면서 섭취해가는 행위, 숨 쉬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해보는 것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경험해보라는 노직(Robert Nozick)은, 
"삶과 세계가 무엇을 담고 있고 드러내는지 외면하고 지나치는 것은, 멋진 음악이 연주되는 방을 지나가면서 그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일갈한다.

◇나를 바로 세우려면

성(性)과 사랑, 감정과 행복, 창조와 지혜, 홀로코스트와 정치 등 20여개 논제를 들고 노직은 역설적 발상과 입담을 펼친다. 
예시로 자주 등장하는 부처와 모세, 예수와 간디라는 이름 때문에, 해박한 식견과 독창적 논리로 기성 철학계를 가차 없이 
공격했다는 천재 철학자의 날 선 논변이 세월과 함께 무뎌진 게 아닌가 의심도 든다. 하지만 노장은 여유롭다.

"사람들은 내가 젊은 시절의 자유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기 바라지만 이제는 아니다. 
설령 어떤 주제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때에도 나는 그에 대한 견해가 없고 견해를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질타한다. 
"아테네 시민이여. 오로지 돈을 벌고 명성과 위신을 높이는 일에 매달리면서 
진리와 지혜, 영혼의 향상에는 생각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철학자의 현란한 문체가 부담스럽지만, 나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일독해야 할 역작이다.


[더 읽을 책] 최고 석학들의 삶을 바꾼 질문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
성찰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어떤 질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웅진지식하우스)는 
세계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사람 90명에게 '당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질문은 무엇인가?' 
묻고 받은 답변을 엮은 책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급한 상황에서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꼽았다. 
디자인공학의 석학 헨리 페트로스키의 질문은 '어디에서 실패했지?'였다. 
그밖에도 '왜 그것은 나에게 습관이 되었는가?'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자극하는가?' 등등 다양하다.

이 질문들의 공통점은 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봐도 좋겠다.